아침공감
사춘기 딸과 한집에 산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널뛰기를 하기 때문에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지 참 어렵다.
얼마 전, 비도 오고 아침에 너무 피곤해하길래 차로 태워다
주는데 지난밤 숙제가 많았는지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오랜만에 손을 잡아봤는데 따뜻하길래
“손이 참 따뜻하네, 아빠 딸” 다정하게 말했더니
“여름이니까 그렇지!” 성질을 내면서 차에서 내렸다.
며칠 후, 늦게까지 방에 불이 켜져 있길래 “아직도 할 거 많아?”
다정하게 물었더니 대답이 없었다.
나는 시원한 물 한 잔을 떠다주며 힘내라고 했더니
“자기가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럴 때 부모는 참 힘들다. “힘들면 하지 마!”라고 할 수도 없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난 좀 고급스러운 말로 위로를 해줘야겠다는 마음에
“아빠가 어렸을 때 책갈피에 많이 써 있던 말인데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라는 말이 있어.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말이야”
진짜 응원해 주려고 한 말인데 딸은 표정을 싹 바꾸더니
“그러니까 나보고 더 구르라 이거지? 아빠 나가”.
아, 이런 마무리를 상상하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어릴 때는 상냥했던 것 같은데 사춘기가 무섭긴 무섭구나.
그리고 얼마 후, 딸 기분이 좋아 보이길래 난 한 번 더 접근을 시도했다.
내가 스무 살 무렵 힘들었을 때, 스승이 해주신 말씀을 인용했다.
“공부 힘들지? 시멘트는 가만히 두면 굳잖아.
근데 레미콘처럼 계속 돌아가면 안 굳는 거야. 그러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러니까 나보고 계속 돌라는 거지?” 버럭, 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와, 사춘기 딸과 나의 간극이 좁혀질 수 있을까?
며칠 전 기말고사가 끝났다면서 딸이 ‘인사이드 아웃 2′를 함께 보자고 했다.
사춘기에 등장하는 ‘불안이’ ‘부럽이’ ‘따분이’ ‘당황이’란 감정들이
‘기쁨이’ ‘슬픔이’ 등과 충돌하며 소녀를 성장시키는 스토리였다.
집에 오는 길에 “아빠, ‘라일리’의 감정을 리드하는게 기쁨이잖아.
결국 사람에게 기쁨이 중요한 감정인 것 같아.
내가 기쁨을 많이 느낄 수 있게 키워줘서 고마워.”
어? 뭐지? 갑자기 철들었나?
역시 사춘기에는 뭘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는 게 답인 것 같다.
* 방송작가 이재국의 글 ‘딸과 산다는 것’ 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