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725목 그 누가 삶은 달걀 하나를 먹었단 말인가!
그대아침
2024.07.25
조회 410
아침공감


전화벨이 울렸다.
주말에 청계산에 가자는 친구 전화였다.

1분이나 걸렸을까, 전화를 끊고 식탁으로 돌아와
삶은 달걀을
먹으려고 하는데, 이게 웬일?
달걀 그릇이 비어 있었다.

"여보, 당신 달걀 먹었어?" "응, 먹었지."
"왜 두 개나 먹었어?" "응? 하나만 먹었는데?"
"그럼 왜 없어? 당신이 내 것까지 먹었으니까 없지."
"난 안 먹었어. 당신이 먹은 거야."
"아니, 내가 내 달걀 먹은 것도 모르겠어?"

"그럼 난 달걀을 두 개나 먹고도 그걸 모르겠어?"
"아니, 내가 치매야?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모르게?"
"그럼 내가 치매란 말이야? 두 개씩이나 먹고도 모르게?"
결국 그날 아침도 전쟁이 재개되었다.
둘만 살면서부터 날마다 이 꼴이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쟁의 발발 원인이
대부분 건망증이라는
점이다. 젊은 날의 그 다채롭기
짝이 없던 원인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총기로 똘똘 뭉쳤다고 해서 '총명탕'이란 별명을 얻었던 나였는데 요즘 말씀이 아니다.
하지만 건망증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미국 수사 드라마들을 볼 때가 그렇다.
재미있게 빠져서 보다가 마무리에 가서야
이미 봤던 드라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이쿠,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건망증 덕분에
'날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는지.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건,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에도 불구하고
'삶은 달걀 실종 사건'은
도저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득문득 그 삶은 달걀은 과연 누가 먹었는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분명 난 안 먹었는데.



* 여성학자 박혜란의 책
<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으니 원문으로 확인하시고,
개인 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