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의 꽃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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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로 귀농한 제자를 찾아가는 은퇴 교사가
제자의 딸 앞에서 ‘학생’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손녀나 다름없는 ‘민지’가 어엿한 선생님이다.
흔한 데다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잡초’라고 불리는 풀들.
하지만 어린 민지는 잡초를 인격체로 대한다.
민지가 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평생 언어를 다뤄온 시인에겐
등짝을 후려치는 죽비처럼 여겨졌을 테다.
‘민지’가 산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지의 ‘꽃’은 우리 유전자 안에 다 있다. 우리가 물을 주지 않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원초적 감성을 되찾는다면, 말이 말다워지고
세대와 세대, 인간과 천지자연이 다시 손을 잡을 것이다.
*정희성 시인의 시 ‘민지의 꽃’ 에 이문재 시인의 글이 이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