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공감
경상도 아이 보리문둥이가
광주의 조천호군에게-
여기 경상도에서는 5월에 늦게 피는 철쭉꽃을 넌달래꽃이라 부른다
우리들 어머니와 누나들이 보리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산에 가서 송기와 산나물을 캐면서 새빨간 넌달래꽃 꺾어
귀밑머리에 꽂으며 고달픈 5월을 견뎌 온 꽃
천호야,
늦게까지 늦게까지 남아서 피어나던 넌달래는
그때 1980년 5월에도 피었을텐데
넌달래꽃 한 가장이 꺾어 너를 달래지 못한 바보 같은 동무-
천호야,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그곳 광주의 슬픈 눈물을 감쪽같이 그렇게
모르고 있었다. 벌써 8년이 지난 지금에야
우리는 너의 다섯 살 때 사진을 신문에서 봤다
아버지의 영정을 보듬고 앉은 너의 착한 눈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5월에 목수였던 천호의 아버지를 또 앗아갔구나
미국 서부의 인디언 아버지들처럼,
남아메리카의 잉카와 마야 아저씨들처럼
그때 인디오의 꼬마들도 슬프게 울면서 몸부림 쳤겠지.
저 뜨거운 아프리카 정글에서
하루아침 습격해 온 백인들의 쇠사슬에
짐승처럼 끌려갔던 흑인 어머니 아버지들.
그날의 아프리카 정글에서도 천호 같은 아이들이 발을 굴리며
목이 쉬도록 울었겠지
천호야,
정말 우리는 몰랐다고 말해도 될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는 텔레비젼의 쇼를 구경하고
싱거운 코메디를 구경하며 못나게 웃고 있었다.
그 긴 세월 8년 동안을.
오늘 아침(1988년) 5월 15일 00신문 17쪽에 너의 사진을 처음 보고
이 날 따라 주일학교에서 부르는 찬송가를 건성으로 부르며
가슴 안이 따갑도록 억울했다. 천호야
하지만 이제부턴 정신 차릴께.
거짓말 잘 하는 어른들
제 나라와 겨레를 팔아 권세 누리는 나쁜 어른들
남과 북을 갈라놓고 싸우게 하고
이제는 또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간붙이려 하는구나.
그러나 천호야
지금 이렇게 늦었지만
넌달래꽃 한 다발 꺾어 너의 가슴에 안겨주면서 약속할게.
우리 함께 따뜻하게 참을 나누며 우리들의 슬픈 어머니를 위로하며
저 백두산 꼭대기까지 남북의 아이들 모두가 하나 되어
이 땅의 거짓을 쓸어내고 다시는 피 흘리는 일 없이 살아갈 것을
-권정생
*1988년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조천호 군에게 쓴 편지글이었습니다.
줄인 내용이 많으니 개인 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