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공감
내가 산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책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을 가지고 걷는 것은 산책이 아니다. 그것은 출장이다.
산책하러 나갈 때 누가 뭘 시키는 것을 싫어한다.
'산책하는 김에 쓰레기 좀 버려줘. 곡괭이 하나만 사다 줘.
텍사스 전기톱 하나만 사다 줘. 어차피 나가는 김인데.'
나는 이런 요구가 싫다. 물론 그런 물건들을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목적이 부여되면 산책은 더 이상 산책이 아니라 출장이다.
애써 내 산책의 소중함에 대해 설명하기도 귀찮다.
그냥 곡괭이 하나를 사다 준 뒤, 나만의 신성한 산책을 위해 재차 나가는 거다.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 목적 없는 삶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야 목적 없이 살 수 있다. 꼭 목적이 없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으므로.
목적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다.
내가 너무 지나친 궁핍에 내몰린다면, 생존이 삶의 목적이 되겠지.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내가 너무 타인의 인정에 목마르다면,
타인의 인정을 얻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겠지.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내가 시험에 9수를 한다면, 시험 합격이 삶의 목적이 되겠지.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잘사는 것은 다르다.
나는 잘생긴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잘생기기를 바라며,
건강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건강하기를 바라며,
지혜로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지혜롭기를 바란다.
나는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다양한 재능이 있다. 혹자는 살아남는 데 일가견이 있고,
혹자는 사는 척하는 데 일가견이 있고, 혹자는 사는 데 일가견이 있다.
잘 사는 사람은 허무를 다스리며 산책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삶을 원한다.
산책보다 더 나은 게 있는 삶은 사양하겠다.
산책은 다름 아닌 존재의 휴가이니까.
*교수 김영민의 칼럼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에서 따온 글이었어요.
줄인 내용이 많은 글이니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 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