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에 쌓인 그릇
밥알의 하루를 지운다
겹쳐 빠지지 않는 그릇을
찬물과 더운물에 담그니
싱겁게 몸을 드러낸다
이렇게 단순하게 풀릴 것을
힘으로만 해결하려 했다
소박한 온기가 그릇의 집착을 놓게 한다
접히는 바람과 풀리는 하늘에도 답이 있음을
문이라고 믿고 두드린 벽의 일들
어쩌면 살아가는 일이란
한 곳의 축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아도
제자리만 맴도는 헛방인지도 모른다
동그라미가 커지는 순간과 터지는 순간 사이
넓이를 따르다 엎질러지고 마는 물인지도
쏴아 쏴아 식경(食經)을 씻는다
허공을 익힌 허기와
길에서 다시 찾은 길까지 다 지워진다
뽀드득,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닦인 그릇의 탄성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는 내 마음
살며시 그 위에 포개본다
성숙옥 시인의 <설거지>
우리에게는 타이밍을 놓쳐서,
방법을 몰라서 망치는 일이 많습니다.
힘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했었는데
오기가 아니라 시간이 필요했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