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13 (금) 간이역
저녁스케치
2018.07.13
조회 359
아무도 없는 간이역에서 마지막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린다

먼 길을 이제 막 다다른 편지처럼
쿵쿵거리며 열차가 올 때마다
봄꽃처럼 설레었을 풍경과 말들 모두 떠나고

늙은 대합실엔 낮달 같은 불빛 두어 개
실려 가지 못한 생애처럼
쓸쓸히 매달려 있다

이렇게 길이 끊어진 적막한 시간에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매양 막무가내 달려야 하는 인생도 때로는
천천히 걷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한 그루 겨울나무처럼 망연히
세상 앞에
알몸으로 울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그런 날은 슬픔처럼 몸 깊숙이 스며들고
번진 속도를 버리고
무궁화호 열차를 타야 하리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바쁘지 않게 가다
보면 누구라도 한번쯤 ,
생의 먼 날을 바라보게 되리

잊혀져가는 쓸쓸함으로
그리움의 뿌리가 붉어지는 것을 만나리

세상을 산다는 것은 속도에 길들여
지는 일, 나는 얼마나
이 외로운 길을 바퀴처럼 굴러 왔는가

노을 속의 꽃처럼
돌아보지 않아도 너무 그리웠던 순간들

빨리 달리는 열차는 간이역에 서지 않는다
오늘 저렇듯 서슴없이 세상 속으로
달려갔을 그들도
산국 피는 가을이 오면

사라진 것을 향해 젖어가는 눈시울처럼
이렇게 무궁화호 열차가
그리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살다보면 생의 굽이에 비가 내리지 않아도
천천히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산 너머 밤의 바다로 별똥별이
떨어지듯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싶을 때가 있다

이상윤 시인의 <간이역>


삶이 특급열차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창밖 풍경은 볼 세도 없고
열차는 정차하기 무섭게 출발해버립니다.
사람과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한 채 내릴 곳에 다다르죠.

가끔은 무궁화호처럼
느리게 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간식도 먹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싶지만
오래된 대합실은 텅 빈지 오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