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을 어디다 두었는지 계약서를 어디다 두었는지
구름을 어디다 띄웠는지 유리창을 어디다 달았는지
적어놓지 않으면 다 잊어버린다
손바닥에 적기를 잊어버려
연인도 바다도 다 그냥 지나쳤다
발꿈치에라도 적었어야 했는데 새 구두가
약국도 그냥 지나쳤다
시간도 적는 걸 잊자 한 달 내내
양파가 짓물렀다
토끼통이 한가득씩 어깨로 쏟아졌다
때론 살아 있다는 것도 깜박 잊어버려
살지 않기도 한다
다만 슬픔만은 어디에 적어두지 않아도
목공소 같은 몇만 번의 저녁과
갓 낳은 계란 같은
눈물 자국을
어디에도 남기고 또 남긴다
김경미 시인의 <수첩>
휴대폰 들고 있으면서도
‘내 휴대폰 어디 있지?’
‘마트 가서 뭐 사와야지’ 해놓고는
다른 것만 잔뜩 사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이토록 정신을 팔고 사는지..
이제는 수첩이라도 친해져야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