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5 (월) 장갑
저녁스케치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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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보인다, 장갑을 보면
그 사람의 손도 보인다
다섯 개의 구멍은 저마다의 굵기와 깊이를 가졌다
현장의 시작과 끝은 그들의 모습으로 알 수 있다
장갑을 뒷주머니에 꽂으면
그게 작업장의 패션이 된다
찾는 장갑을 보면
기초를 하는지 미장을 하는지 도배를 하는지
진짜 이름은 예식 장갑이다
반코팅 장갑은 일용의 기본 장갑
인부들이 갖출 기초 장비
낱개로 사면 일이 없는 사람이요
한 타 사면 큰일 하는 사람이다
KT 직원이 목장갑을 사는 이유는 전봇대 때문,
목수 장씨가 용접 장갑을 사는 이유는 패널 때문,
무수촌 이장 이씨가 반도체 장갑을 사는 이유는 접과 때문,

장갑엔 저마다의 이유가 들어 있다
장갑엔 저마다의 일이 들어 있다
저마다의 목소리는 사는 이유가 된다

홍정순 시인의 <장갑>


새까맣게 때가 묻고
손가락 끊은 구멍이 뚫려있는 장갑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려주죠.
우리의 장갑은 나의 손을 대신해서
오늘도 열심히 낡아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