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쉽게 떠나고 나는 잡을 방도가 없고
이런 속수무책이 억울하다 지겹다 생각하다가
껌딱지같이 나를 떠나지 않는 지겨운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하니 그런 것들이 어쩐지 기특하니 좋다
지겨운 길 지겨운 출근 지겨운 밥 지겨운 잠이 좋고
지겨운 기대와 실망이 좋고
지겨운 결심과 후회가 좋고
지겨운 꽃 지겨운 별 지겨운 노래 지겨운 바람이 좋다
지겹게 대책 없는 '아무 거나'가 좋고
기약 없이 지겨운 '언제 한 번'이 좋다
늘 한결 같이 무턱대고 지겹다 좋다
아, 또 그리고 나 때문에 낡은, 내가 지겹다는 아내가 좋다
오성일 시인의 <지겨운 것들>
‘지겹다’를 다른 말로 하면
내 옆에 항상 있어온 것들이 될 수 있겠네요.
변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가끔 밀쳐내도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
쉽게 변하고 쉽게 떠나는 게 많은 요즘은
이런 것들이 진짜 소중한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