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27 (화) 신문
저녁스케치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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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들만 모른 체하면
신문은 이리저리 접히는 보자기,
나는 신문이 언론일 때보다
쓸쓸한 마른 보자기일 때가 좋다

그 신문지를 펼쳐놓고 일요일 오후가
제 누에발톱을 툭툭 깎아 내놓을 때가 좋다

어느 날 삼천 원 주고 산 춘란 몇 촉을
그 활자의 만조백관들 위에 펼쳐놓고
썩은 뿌리를 가다듬을 때의 초록이 좋다

예전에 파놓고 쓰지 않는 낙관 돌들
이마에 붉은 인주를 묻혀
흉흉한 사회면 기사에 붉은 장미꽃을
가만히 눌러 피울 때가 좋다

아무래도 굴풋한 날 당신이
푸줏간에서 끊어온 소고기 두어 근
핏물이 밴 활자들 신문지째로 건넬 때의 그 시장기가 좋다

이젠 신문 위에 당신 손 좀 올려보게
손목부터 다섯 손가락 가만히 초록 사인펜으로 본떠 놓고
혼자일 때
내 손을 가만히 대보는 오후의 적막이 좋다

유종인 시인의 <신문>


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다 본 신문을 보자기며,
각종 깔개, 연습장으로 쓸 땐
편안하고 느긋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가 많았네요.
이런 정겹고 훈훈한 우리의 이야기가
신문을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