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굽이 나를 인도한 곳은 구두병원이었다
앞만 보고 걸은 것뿐인데 바깥쪽이 달아있었다
내 중심을 잡아준 것은 약삭빠른 머리도
부지런한 발도 아닌 구두밑창이었다
몸통이 깎여나가는 동안 길을 편히 다닐 수 있었나보다
말없이 내 하중 받아내며 동행했던 것이다
걸어온 길의 이력이 새겨진 뒷굽
주위의 보폭을 가늠하지 않았던
성급한 내 걸음을 제어한 흔적이 역력하다
바른길만 걷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발만큼이나 허술한 수선공,
내 얼굴 힐끗 보곤 밑창을 갈아치운다
시속 0키로의 휴식, 아득한 발자취를 섬긴 기억과
들락거린 비밀까지 모두 지워버렸다
정작 갈아야 할 것은 무겁거나
치우친 내 안쪽인지도 모를 일,
새삼 걸음이 낯설다
이성웅 시인의 <밑창을 갈다>
지칠 때는 신발을 끌면서 걷고
화가 날 때는 돌멩이나 깡통을 차기도 했습니다.
신발은 내 발을 대신해 밑창이 닳고 코가 헤졌죠.
정작 갈아야할 것은 신발 밑창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 아니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