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어디에서 오나
두부가 엉기듯
갓 만든 이 저녁은
살이 부드럽고 아직 따뜻하고
종일 불려놓은 시간을
맷돌에 곱게 갈아
끓여 베보자기에 걸러 짠
살며시 누름돌을 올려놓은
이 초저녁은
순두부처럼 후룩후룩 웃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좋을 듯한데
저녁이 오는 것은
두부가 오는 것
오늘도 어스름 녘
딸랑딸랑 두부장수 종소리가 들리고
두부를 사러가는 소년이 있고
두붓집 주인이 커다란 손으로
찬물에 담가둔 두부 한 모를 건져
검은 봉지에 담아주면
손바닥을 도마삼아
숭덩숭덩 저녁이 썰어 끓여낸
새우젓국 두부찌개 한 입을
추운 속이
얻어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고영민 시인 <두부>
하루 일을 마치고
편안히 등을 기댄 이 시간은
너무도 안락하고 편안한 때이죠.
그 모습이 어쩌면 부드럽고 뜨뜻한
두부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래서 오늘 '길에게 길을 묻다'는
고영민 시인의 <두부>를 골라봤습니다.
그래요. 오늘도 두부처럼 편안한 저녁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