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껍질을 벗기다
싹이 돋은 감자 눈을 파낸다
귀찮은 듯 무심히 도려내다
왠지 감자의 생각을 싹둑싹둑
자르는 것 같아 감자에게 미안하다
어두운 상자 안에서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렇게 독한 말을 남긴 걸까
문득, 감자를 보내주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이 궁금해
어쩌다 전화를 걸면 늘 바쁘다고
단번에 말을 자르는 딸
아버지는 매몰차게 잘린 말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시골집 한구석 컴컴한 방에 누워
혼잣말로 밤을 지새운,
못다 한 그 말들이
암으로 자라난 걸까
설거지통에
뭉텅뭉텅 잘린 아버지의 말들이
감자 눈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정경해 시인의 <감자 눈>
어려서부터 그렇게 해오지 못한 분들은
자라서도 부모님에게 살갑기가 쉽지 않죠.
“어 그래, 바쁜데 전화해서 미안하다.”
수화기너머로 더 작아지시는 부모님을 보면
속상하지만 끝까지 미안하다고는 말 못하는...
부모님에게 참 무심한 자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