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검은 비닐봉지가 아름답게만 보인다
곧 구겨지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사물의 편에서 사물을 비추고
사물의 편에서 부풀어오르고
인정미 넘치게 국물이 흐르고
비명을 무명에 담는 비닐봉지여
오늘은 아무렇게나 구겨진 비닐봉지 앞에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근화 시인의 <유통기한>
검은 비닐봉지는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언제나 남을 위해 쓰이다가 버려지죠.
넘치는 국물을 받아주고
무거운 것이든 가벼운 것이든
힘껏 감싸주는 검은 비닐봉지.
하찮아 보이는 비닐봉지에게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