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27 (수) 시래기
저녁스케치
2017.12.28
조회 256
뒷산에 오르다가 팻말 따라 간
배추밭, 몸통들은 다 팔려가고
입다가 벗어놓은 헤지고 찢긴 겉옷만
즐비하게 널려 있다.
주섬주섬 주워 모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신호등 근처
주위 사람들이 나를 시래기 쳐다보듯 한다.

끈으로 엮어 뒷베란다에 매달고
시들시들 마르길 기다린다.
김장배추로 맛있는 김치가 되지 못한 것들
대롱대롱 매달려
문 열면 파리한 모습으로
서걱서걱 삶을 서걱댄다.

몇 달 동안의 바람과 햇살이 스며서 만든
가쁜 숨결, 푹 우러나온 시래기국
밥 한 그릇 거뜬히 말아먹고 나니
그동안 그네들이 즐겁게 맞았던 빗방울들이
내 콧잔등에 송송 맺힌다.

이상인 시인의 <시래기>


배추밭에 나뒹구는 헤진 이파리처럼
누구는 자신의 삶이
이미 시들어버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삶조차 햇볕에 곱게 말려
갖은 양념을 하면 싱싱한 이파리처럼
다시 서걱거릴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