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한 마디쯤 앞서는 눈물도 갑이다
항상 참을 수 없이 흘러 나를 이긴다
외길만 고집하는 모성도 갑이다
잘 빗고 꾹꾹 눌러주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가르마처럼
좌절을 용서 못 하는 결심도 갑이다
방충망에 걸린 나비를 발견하고
보내주려고 이리저리 길을 내어주어도
나비의 집념이 끝내 나비 날개를 주저앉히는 것처럼
일기 예보에 예고된 비도 갑이다
젖지 않으려고 장화를 신고 큰 우산을 똑바로 써도
한쪽 어깨가 젖고 만다
텅 비어서 빛나는 마음도 갑이다
욕망이 들어올 틈 없이 품고 있다가
꼭 당신에게 보이고 싶을 때
본래 있던 그 자리는 온데간데없다
다 안다고 믿는 당신의 현재도 갑이다
온종일 막다른 골목에서 당신을 기다려도
당신은 이미 다른 추억을 건너고 있다
나를 지나쳤거나 나에게 미처 닿지 못한
모든 것들을 아쉬워하며 떠올리는 순간
나는 갑에서 멀어질 것이다
윤인미 시인의 <을(乙)의 논리>
잘못된 걸 알면서도
갑인 양 으스댈 때가 있습니다.
얼마의 가진 것으로 무례해지려 할 때마다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가진 게 많건 적건, 명예가 있건 없건,
사람은 제 눈물도 마음대로 참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기억하고 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