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다 사람 좀 그려보라고
딸아이가 떼를 쓰며 도화지를 들이 미는데
백지가 사막같이 넓고 아득하다.
사람이 어디쯤에 있어야 하지?
사람을 어떻게 그리더라?
시험지를 받아 든 듯 정신이 아뜩하다.
울퉁불퉁 둥그렇게 머리통을 그리고
듬성듬성 머리카락,
퀭하니 마음을 알 수 없는 눈,
실없는 농담처럼 삐뚤어진 코,
허기진 듯 반쯤 벌린 입,
볼품도 없고 크기도 다른 귀를 붙여놓고 들여다보니
있을 건 다 있는데 왠지 허전한 게
아무래도 사람 같지 않아서
색연필을 못 놓고 머뭇거리고 있다가
이게 뭐냐고, 여태 사람도 못 그린다고
유치원 졸업반 딸아이한테 제대로 면박을 당하고
무안하여라, 하루 일의 절반이 사람을 보는 일인데
어려운 일 중에도 사람을 그리는 일이 어렵구나 ---
설명하는 일 또한 어려워 쥐구멍을 찾다가
어렸을 적 수없이 그렸던 사람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민망한 눈길 아득한 사막을 헤매노라니
도화지 속의 얼굴이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
절룩절룩 걸어 나와 내 어깨를 짚어줄 것만 같다.
류정환 시인의 <사람 그리기>
알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웃는 얼굴에서도 슬픔이 보이는가 하면
그토록 원하는 걸 이룬 사람의 눈에서 공허함이 비치기도 하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지친 어깨와
굳게 다문 입술은 또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형편없는 그림실력으로 표현하기에는
사람은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존재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