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19 (화) 안개 속에 숨다
저녁스케치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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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 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류시화 시인의 <안개 속에 숨다>


안개 속에 나를 가둡니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고
외롭지만 거리는 두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나 스스로를 알아가도 모를 사람으로 만들고는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