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28 (목) 박서빈씨에게
저녁스케치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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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모르는 당신의 이름이 내 우편함에 쌓여 가요 서빈씨
이번 달 건강보험료는 잘 내셨나요
나는 매달 잠시 걱정합니다
당신은 나 이전의 이 주소의 기억으로 살다 떠난 사람 혹은
나와 함께 살면서 마주하지 않는 사람
유령이라기엔 다정하고 안부라기엔 희미합니다

때로 나는 당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랫동안 물 주는 걸 잊었던 화분이
저들끼리 푸를 때나
배고프다
배부르다
소리 내 중얼거리는 순간에요
나보다 외로운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괜찮아져요
그렇게 열한시를 우겨내요

아시다시피
나는 신 걸 먹으면 왼쪽 어금니가 부서질 것처럼 시려요
그래서 밤에만 말이 많아지는 거예요
햇볕이 입에 들어갈까 봐 무섭거든요

그럼 혼자 사는 게 쉬운 줄 알았니
친구가 한 말이에요
뭐든 냉동실에 바로 넣어놔라
그럼 한참 나중에 먹어도 괜찮다
이건 가족이 한 말입니다

늦은 귀갓길, 얼음칸처럼
불 꺼진 우리 빌라를 바라보며

서빈씨 일찍 잠들었네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그러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백인경 시인의 <박서빈씨에게>


알고 있는 거라고는
이름 석자와
내가 이사 오기 전에
우리집에 살았다는 사실 뿐인데...
내 우편함에 낯선 이름의 우편물이 꽂힐 때마다
잠시 잠깐 걱정을 합니다.
어쩐지 당신도 혼자 사는 일을
힘겨워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