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 4 (금) 코뚜레
저녁스케치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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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 년 쇠죽을 잘 끓여 먹이고 나면 아버지는 송아지의 콧살을 뚫어 코뚜레를 꿰었다. 대나무나 대추나무를 깎아 어린 소의 콧구멍에 구멍을 낸 뒤 미리 준비해둔 노간주나무로 바꿔 꿰는 작업이었다.

코뚜레는 단단했고, 어린 소의 코에선 며칠씩이나 선홍빛 피가 흘러내렸다. 소는 이내 아픈 코에 굳은살이 박였는지 오래지 않아 한결 유순하고 의젓한 소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놈을 몇 달 더 키운 뒤 일소로 밭에 나가 부리거나 제값을 받고 먼 시장에 내어다 파는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사납고 무서웠던지, 오십이 다 된 나는 지금까지 코뚜레를 꿰지 못한 어린 소로 살고 있다. 누가 밖에 데려다 일을 시켜도 큰일을 할 자신이 없었거니와, 나 같은 얼치기를 제값 주고 사 갈 위인도 세상엔 없을 것 같았다.

삶이, 그것이 힘들어 앓아눕는 날이 많을수록, 막 코뚜레를 한 어린 소 한 마리 나 대신 엎드려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이 꿈에 자주 보인다.

신휘 시인의 <코뚜레>


'나는 의젓한 어른이 된 걸까?'
'어디에 가서도 제값을 하는 사람인 걸까?'

사는 것이 힘들어
갈던 밭을 뛰어나가고 싶을 때면
'나는 아직 코뚜레를 하지 못한
어린 소가 아닐까...'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