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꽃이 피거나
열매 맺는 일이란 습성이나
본성이 아닌 거야
검은 흙 속을
아주 오래 무던히 걸어 온 시간들이
단단하게 뭉쳐 있다가
풀려지는 일이야
감자 꽃이 피는 것은
하얗게 피어 말하는 것은
땅 속에 말 못할 그리움이
생겨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지
Ⅱ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봐. 저 들판, 저 강가, 네가 발 딛고 선 이 언 땅 속 어디에든 바람이 숨겨 둔 풀씨들이 발꼬락을 움직여 무엇으로 일어서려하는지. 한 때 그것들은 서로 다른 날개의 길이로, 그 불균형으로 바람을 타고 올랐을 것이고, 혹은 가능한 멀리로 자신을 뱉어 내는 그 모든 세상에서 밀려나 아주 쓸쓸한 저녁을 맞았을지도 모르지. 잘 보면 네가 가고 싶은 곳은 분명히 보일 거야. 바로 네가 발 딛고 선 그 자리일지도 몰라. 네가 가둔 것들, 네가 끝끝내 손에 쥔 그것들을 놓아봐.
이승희 시인의 <씨앗론>
꽃과 열매 안에는
우리가 땅에 묻었던 말 못할
그리움이 담겨있나봅니다.
꽃을 볼 때
추억 속에 누군가가 떠오르고
잘 익은 열매를 먹으며
멀리 있는 가족을 생각하는 것도
모두 그 속에 담긴 그리움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