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0 (목)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
저녁스케치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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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여행을 갈 처지도 못 되고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을 때
나무 그늘 흔들리는 걸 보겠네
병가라도 내고 싶지만 아플 틈이 어딨나
서둘러 약국을 찾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병을 앓는 것도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을 때
오다가다 안면을 트고 지낸 은목서라도 있어
그 그늘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겠네
마흔 몇 해 동안 나무 그늘 흔들리는 데 마음 준 적이 없다는 건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는
얘기처럼 쓸쓸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다 지워졌는데 그 눈빛만은 기억나지
눈빛 하나로 한 생을 함께 하다 가지
나뭇잎 흔들릴 때마다 살아나는 빛이 그 눈빛만 같을 때
어디 먼 섬에라도 찾듯, 나는 지금 병가를 내고 있는 거라
여가 같은 병가를 쓰고 있는 거라
나무 그늘 이리저리 흔들리는 데 넋을 놓겠네
병에게 정중히 병문안이라도 청하고 싶지만
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멀쩡하게 겨울이 지나갈 때

손택수 시인의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우리는 자유로운 것들을 바라봅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나뭇잎,
살랑살랑 거리는 풀잎,
유유히 떠다니는 뭉게구름,
상공을 가로지르는 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