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4 (월) 십년 만의 답장
저녁스케치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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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떠준,
털스웨터를 가슴까지 끌러서 아이의 장갑을 만들었습니다
이제야 당신의 마음이 손에 잡힙니다
아이와 함께 한 짝씩 그 마음을 나눕니다
그 어린아이와 액자 속에서 한참 놀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보다가
아이가 휘휘 저은 나이를 먹어서,
나는 한입 먹고 놔둔 사과처럼 붉어집니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노을을 집안에 잘못 들여놓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내 검은 구두에 주름살 생기고 그
구두 속으로 거꾸로 매달린 꽃잎이 메말라 떨어지고
요 앞, 담배가게까지 슬리퍼를 끌고 갔다 돌아오는 길
이웃의 꽃담장을 봅니다
(십년 전 당신은 왜 저 꽃들처럼 수줍어 피었습니까)

묵묵히 집으로 오는 길에
십년 동안 빈 우체통에 고갤 처박습니다

저쪽 계란장수가 너무 크게 떠들어대서 저쪽 삶을 다시 봅니다
그쪽도 잘 있죠

이기인 시인의 <십년 만의 답장>


이따금 생각나지만
전처럼 아프지는 않습니다.
가끔 궁금하기는 하지만
금세 다른 것들에 신경을 뺏기죠.
십년이라는 세월, 그동안
마음도 많이 담백해졌습니다.
잘들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