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가만히 앉았다 가세요.
사려니숲까지 와서 나무 의자에 앉았다면
아들이 내신 1등급이라는 자랑이며
엊그제 먹었던 돌돔의 식감 같은 거
혀로 돌돌 말아 엄니로 사려 물고
조금이라도 침묵 하늘이랑 놀다 가시지요.
여기저기 주르르 서 계신 삼나무께는
집값 얘기 따위야 낙엽일 뿐이잖아요.
주식 시세로 숲 흔들면 미안하잖아요.
저 오래된 삼나무의 올해 연세며
삼나무 뿌리가 바위 헤집는 데 쏟은 눈물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안 될까요.
이런 것도 싫으면 말없이 있다 가세요.
큰 소리 삼가고 사풋사풋 걸어가세요.
귀 밝은 삼나무 싹이 낮잠 자고 있으니까요.
여기까지 오셨으면 시누가 돈만 많다고 흉보지 마세요.
지인의 항암 얘기는 숲 바깥에 놓고 오세요.
여기는 사려니숲이니까 삼가,
삼가, 가만히 앉았다 가세요.
정진용 시인의 <방심>
여행까지 가서
안 좋은 얘기는 하지 말아요.
좋은 곳에 왔다면
그저 그곳의 자연과 풍경을 느끼면 되죠.
방심하는 사이
자랑이며 험담이며
푸념이 나오지 않게
그저 숲에 들어가서는
말하기를 멈추고 마음을 열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