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3 (금) 잠만 잘 분
저녁스케치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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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잘 분 구합니다”
전봇대에 달라붙은 쪽지 한 장
이 골목에 빈둥빈둥 노는 방 하나가 있다
뒤꼍으로 돌아앉아 고양이울음이나 바라보는 작은 방
밥 냄새가 나지 않고
왁자지껄 목소리가 피어오르지 않는 곳
혼자 일어나 조용히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와 외로운 잠을 눕히는 방
뒤꼍 출구로 살금살금 드나들어
한 지붕 아래 주인과 얼굴이 마주치지 않는 방
몇 푼의 방세로 꼬박꼬박 적금을 붓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계산하는 방
햇살도 서늘한 공기에 한 발 뒤로 물러서고
곰팡이처럼 눅눅한 고요가 사는 곳
이 골목 끄트머리
군대 간 아들이 돌아오면
언제든 비워줘야 하는 빈방 하나
사람냄새 피우지 않고, 잠시
누웠다 갈 잠을 찾고 있다

신미애 시인의 <잠만 잘 분>


“잠만 잘 분 구합니다” 해서 집을 보러 가면
몇 개의 옷가지만 놓고 몸만 뉘일 수 있는,
그런 방을 보여주시죠.
나무의 뿌리가 뻗길
원치 않는 땅이 있다면 이런 걸까...
집 없는 삶이
유난히 가슴을 찌르는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