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자청파 심을 고랑을 파고 있습니다
호미로 판 고랑 가장자리 골은 나작했지만
가운데 골은 우멍 깊습니다
포기가름한 모종을 간조로미 고랑 따라 놓는데
갑자기 골 깊은 데 앉는 모종이 걱정입니다
하 깊이 묻으면
막 주머니에서 떨어져 자개농 밑으로 숨은 은전처럼
꽃구경 갔다가 여즉 돌아오지 않은 큰집 할아버지처럼
싹눈이 땅을 뚫고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
호미등으로 따작따작 흙을 끌어다 덮으며
할머니가 그러십니다
가장 짚은 데서 촉이 먼저 올라온다 하십니다
짚이 묻은 씨알이 땅심을 더 잘 받는다 하십니다
그래도 걱정이 된 나는 할머니 모르게
고께고께 새앙쥐처럼 고랑 가운데 흙을 덜어내기도 하고
먼산바라기로 서서 소로소로 발로 흙을 흩어놓습니다
며칠 뒤 열무 솎고 정구지 뜯으러 남수밭에 갔을 때
정말, 고랑 가운데 자청파가 껑충 발돋움한 것같이 솟아 있었습니다
푸릇푸릇 성질머리 곧추세우고 긴 한배 짧은 한배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홍경나 시인의 <자청파>
깊게 심은 씨알이
먼저 올라오듯이
인생에 어려움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죠.
푸릇푸릇한 성질머리를 곧추세워가며
우리는 지금 일어서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