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반가운 전화처럼 봄이 울린다.
그 진동에 모든 사물이 깨어나고 돌아본다.
봄이 도착했다.
이미 대문 안쪽에 가득하다. 노랑나비들이 무수히 팔랑이는 듯한 봄빛. 낡은 나무 대문에서 새어나오는 새봄이 맑고 아름답다.
저 봄볕과 함께 닿은 것들.
봄꽃 같은 사랑, 봄옷 같은 희망, 오랜만의 안부와 새로운 눈짓이 함께 비쳐 나온다.
빛살이 그어진 땅바닥에 봄하늘이 보이고 봄사람이 보인다.
때묻은 대문으로 들락거렸을 발걸음들, 살가운 웃음과 설움들, 함께 종종거렸을 추억과 미래들.
문은 그 더운 살과 피로 천천히 늙어갔으리라.
그렇게 보내고 맞이하며 꾸려낸 삶, 그 속으로 다시 봄이 온다.
다시 그대가 오고 내가 온다.
우린 늘 자신을 향하여 걷는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을 찾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봄은 자기를 발견하게 하는 마법의 문이다. 만약 계절이라는 자연이 없다면 우린 얼마나 더 헤매게 될까.
삶은 커녕 '자기'라는 주어진 신비를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계절은 생명의 밀을 푸는 은빛 열쇠가 분명하다.
봄은 모든 존재를 찾아내어 연결시킨다. 그것이 소생이다. 만물이 다시 태어나고 가까이 다가앉는다.
그런 자연의 품에서 우리는 삶의 순리를 배우는 것. 그 부활은 낯설지 않다.
삭제되었거나 잊혀졌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주가 항상 그 자리에서 스스로 가득한 채 무수한 별을 운행시키듯 모든 세계는 언제나 잠잠히 빛나고 있었던 것.
다만 모든 것들은 구석에 숨어있고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들은 크고 작은 숟가락 틈새에 ,시집 제목 속에, 무심코 신은 구두 속에, 할머니의 군말 속에, 시내버스의 얼룩진 유리창에, 그 사이사이를 불던 바람 속에 오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뜻밖의 반가운 한 통 전화처럼 봄이 울린다.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 진동에 모든 사물이 깨어나고,돌아본다.
튀쳐나오듯 돋는 풀빛에 설레는 가슴들. 그 설렘은 생명의 뜨거운 열정을 스스로 느끼는 힘이 된다.
자기를 느끼는 순간은 새로운 자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것이 모든 문학에서 봄이 만남의 배경이 되는 이유이며,출발인 이유이다.
봄은 이름을 부른다.
숨어있는 이름을 찾아내고 불러일으킨다.
문이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듯 봄은 생명과 생명을 연결한다.
길과 길을 연결한다.
진리는 어떤 접촉의 순간, 발견되고 피어나는 꽃이 아닌가. 책이나 사람이나 아름다움이나 모두 그렇다.
마치 잘 보이지 않더라도 희망이 언제나 우리 속에 반짝이듯 말이다.
봄빛 가득한 대문에서 무수한 생명의 손자국을 본다. 당신의 생애에 몇 번째의 봄을 맞이하는가.
몇 번째의 문을 여는가.
몇 번째의 아름다움을 낳고 있는가.
김수우 시인의 <봄은 또 하나의 문이다>
여린 꽃과 연두 빛 버드나무가
삭막한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봄 햇살은
사람들의 눈빛도 반짝이게 만드네요.
마침내 봄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제 대문 밖으로 나가
희망과 사랑이 가득한
이 아름다운 봄을 맞이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