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오신 시어머니
집이 높아 어지럽다며 진저리를 치다가도
당신 아들 출근할 때는
18층 베란다 난간에 서도 두렵지 않다
목을 길게 빼고 즐거운 독백을 하신다
아범 뒤태가 꼭 지 아버지 같구나
복 많다는 소걸음도 똑같네
야무지게 생긴 작은 키도
구부정한 어깨도, 판박이네 판박이
앉았다 일어설 때
관절에 신음을 달고 살면서도
당신 손자 학교 갈 때 또 베란다로 나가신다
내 새끼 저기 간다 꼭 지 아비네
키도 걸음걸이도 구부정한 어깨도 삼대가 똑같구나
멀리서 봐도 황 씨 핏줄 단박에 알겄네
내 새끼 걸어가니 길이 훤하구나
손자 모습 사라지자 흐뭇이
거실로 들어오시는 시어머니
눈에 낀 두꺼운 콩깍지에
베란다 화초들이 입을 막고 킥킥거린다
정영선 시인의 <핏줄>
어르신들은
아비 닮은 자식 얼굴,
자식 닮은 손주 얼굴만 봐도
배고픔, 두려움, 아픈 것도 싹 잊으시곤 하죠.
핏줄 그게 뭔지... 연세 드실수록 가족사랑에 사는 부모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