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모처럼 기분이 좋으시다. 노란 금시계를 내밀며, 이거 봐라. 오늘 집에 오다가 횡재했다. 십만 원짜리를 삼만 원에 샀다. 허어, 이 비싼 걸 그리 싸게 주다니. 검게 그을린 팔뚝에 금시계 눈부시다. 주름진 손에 금시계 반짝인다.
싸구려 도금시계. 얼마 못 가 맥기칠 벗어질 조잡한 금시계를 아버진 도무지 모르신다. 술 한 잔에 보증 서주고 집 날리고 친구들에게 봉이라고 불리는 세상모르는 아버지, 그러고도 아직 남을 믿는다. 칠이 다 벗어져 거뭇거뭇한 아버지. 며칠 후 멈춰버릴 시계를 믿는다. 길에서 처음 본 시계장수를 믿는다. 오늘 참 고마운 사람을 만났어, 어허, 이 비싼 걸…
마경덕 시인의 <아버지의 금시계>
누구나 속아본 경험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속고도 아직 믿고 있는 게 있습니다.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거,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거,
이 믿음만큼은 아무리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