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산새만큼 많은 말을 써버렸다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물소리만큼 많은 목청을 놓쳐버렸다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씻고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오며 본
너무 많은 꽃을 매단 아카시아나무의 아랫도리가 허전해 보인다
그 아래, 땅 가까이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한 나팔꽃이 묵묵히 울타리를 기어 올라간다
말하지 않는 것들의 붉고 푸른 고요
상처를 이기려면 더 아파야 한다
허전해서 바라보니 내가 놓친 말들이, 꽃이 되지 못한 말들이
못이 되어 내게로 날아온다
아, 나는 내일도 산새만큼 많은 말을 놓칠 것이다
누가 나더러 텅 빈 메아리같이 말을 놓치는 시간을 만들어 놓았나
이기철 시인의 <말>
한바탕 떠들고 돌아오는 길이
어딘지 모르게 허전할 때가 있습니다.
그 말은 하지 말 걸... 후회 돼서
아까 이렇게 말할 걸... 뒤늦게 떠오른 생각 때문에
어떤 말들은 지우고 싶고, 어떤 말들은 다시 쓰고 싶어지죠.
알맹이가 든 말만 골라 할 수는 없을까...
말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