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10 (월) 빨래가 마르는 시간
저녁스케치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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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빨래가 널려 있다
이동 건조대 가득 큰 대자로
위쪽은 나란히 직수굿하고
아래는 넌출진 구비를 드리운다
세탁기 속에서 혼비백산
그 컴컴하고 거친 물살을 통과한 기억이
빨래에게는 없는 것 같다
머릿속까지 표백되었을지도 모르니

세상에는 매달려서 견디는 것들이 많다
나도 어떤 것에 안간힘으로 매달려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던 때가 있었다
외줄을 잡고 젖은 빨래처럼 허공에서 뒤채었다
씨앗이 여무는 시간도 그러했으리라
양팔 가득히 빨래를 걸치고 서 있는 건조대가
수령 오래된 한 그루 빨래나무 같다

은결든 물기와 구김을 다림질해 주듯
햇볕이 자근자근 빨래의 등뼈를 밟고 다닌다
어느 어진 이의 심성과 순교의 윤회일까
제 본분인 양 빨래는
모짝모짝 부지런히 말라간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배경에 잠풀 향기 은은하다

사윤수 시인의 <빨래가 마르는 시간>


소매와 바짓단을 축 늘어뜨린 빨래가
한없이 지친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외줄을 잡고 버티던 언젠가의 우리들처럼 말이죠.

잠시만 버티면 될 거예요.
빨래가 마르듯이 시간이 지나면 눈물도 마를 테니까...
그때는 다시 새 옷처럼 가벼워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