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나를 닮아 수박을 좋아한다. 수박 때문에 여름을 좋아한다. 여름 글자를 써 달라고 한다. '여름'이라고 써 주자 그림책을 가져와 무성한 푸른 잎을 거느린 나무 그림을 보여 주며 여름 글자 필요 없어. 이게 여름이니까. 여름 생각하면 수박, 여름 생각하면 자두, 여름 생각하면 포도, 여름 생각하면 매미. 아빠, 매미 말고 여름에 태어나는 게 또 뭐가 있어? 모기. 모기? 모기는 물기나 하고 너무 시시해. 아이가 시시해하는 모기 때문에 여름마다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모기약이 아이한테 해로울까 봐 새벽에 잠 설치며 한 마리 한 마리 직접 잡았으니……. 그 시시한 모기 소리가 얼마나 선명하게 들리던지. 모기야, 아기 피 말고 내 피를 빨아먹으렴. 아기가 모기 많이 물리면 속상해하시는 장모님 얼굴이 생각나 두려웠던 여름날들. 그림책보다 더 여름 같은 나무를 볼 날이 달려오고 있다.
정재학 시인의 <여름 글자 필요 없어>
푸르고 무성한 나무를 보면
이게 바로 여름이구나 싶죠.
많이 힘들기는 해도 더워야 여름이고
모기 때문에 성이 가셔야 여름일 겁니다.
수박 한 입, 바람 한 점에
틈틈이 더위를 식혀가면서 조금 더 버텨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