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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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빨간밥통
이수진
2018.12.25
조회 133
제게는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타지에서의 따뜻한 제 끼니를 해결해주던
빨간밥통이 있었어요.

특별히 대단한 기능은 없는 그냥 투박한 밥솥이었는데
몇일 전부터 삐삐 소리를 내더니 고장이나버린거있죠.

스마트폰으로도 취사가 가능한 멋진 새 밥솥이 왔는데
이상하게 그 빨간밥통이 버려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렇게 몇일을 현관 한켠에 두고 보냈죠.

그러다 오늘, 성탄미사를 다녀오는 길
굽은 등으로 파지를 모으시는 할머니가 집앞에 계시기에
고철같은 것도 가져가시냐 물으니 그렇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고선
사진 몇장을 급하게 남기고 그 빨간밥통을 안고 나왔어요.

혹시나 할머니가 댁에 가져가실까 싶어 고장이 났다고 단단히 말씀드리고 돌아서는데
가로등 불빛아래 작업하시는 할머니곁에 놓여진 그 빨간밥통의 모습에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지더라구요.

10년이 넘은 제 긴 이방인생활을 같이 해준 고마움과 아쉬움이 갑자기 밀려왔나봐요.
어릴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떠나보내는 그런 마음처럼 묘한 서운함에 눈물이 또르르 흘렀는데
친구가 그런 저를 보고, 그 빨간밥통이 크리스마스를 맞아서 조금이나마 필요한 사람에게 가기를 기다린거 같다며 저를 위로해주더라구요.

그러고서는 자기는 예전에 밥 지으며 물을 안넣은걸 모르고 멀쩡히 잘되던 밥통도 버린적이 있다는 이야기에
눈물 맺힌 저와 함께 웃었네요.
그렇게, 또 한번의 크리스마스가 우리를 지나갑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신청곡 : 뜨겁게 안녕 (T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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