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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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남편...
김미애
2018.10.07
조회 147
"엄마, 귀가 어두우신가 봐요. 검사 한번 받아 보셔야겠어요."
십수년 전 우리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엄마는 "괜칞아, 귀 어두운 건, 눈이 침침해 그게 걱정이지. 왼쪽 눈은 신경이 막혔다고하고 한쪽도 안 좋으니... 귀는 좀 어두워도 안 불편해. 누가 내 욕하는 거 못 들어도 되고."라며 농담처럼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오랫동안 뇌졸증을 앓으시던 아버지 수발을 당신 자신도 성치 못한 몸으로 도맡다시피 하셨고 오빠도 투병 중이라 엄마에게 귀 좀 어두운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우리 네자매는 그러려니 하며 자기 삶에 바빠하며 세월이 흘렀고 그러다 "엄만 요즘 통 못 들으시네." 했을 땐 서서히 청력이 많이 손상된 뒤였어요. 그래서 해 드린 보청기를 잘 끼지 않으시니 여전히 엄마와의 대화가 답답해서 우리는 짜증이 났습니다.
"그거 비싼 건데 왜 안 끼세요? 아깝게..."
"왕왕 소리에 머리가 아프고, T.V.소리는 쨍쨍 울려서 더 못 듣겠고..."

"처음엔 다 그렇대요. 참고 끼다보면 적응될테니, 불편해도 끼는 습관을 들이세요." 우리 말에 엄마는 알았다고만 하시고 끼질 않으셨어요.
같은 도시에 사는 두 언니는 손주들 보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멀리 사는 동생과 저는 일년에 몇번 명절같은 때 가면 올라오기 바쁘니... 9년 전 외아들 오빠를 가슴에 묻고 4년 전 아버지를 보낸 후 횅뎅그렁한 집에 홀로 지내시는 87세 고령의 엄마가 걱정되고 안쓰럽지만 마음뿐입니다.

가끔 안부전화를 드리면 "응? 뭐라고?" 재차 물으시고 엉뚱한 대답을 하시니 제 목소리 톤은 올라가게 되고 그러면 더 알아 듣지 못하십니다.
예전엔 요리하는 법도 수시로 묻고 툭하면 속상한 일을 하소연도 하면서 정겹게 통화했었는데 이제는 안부전화 드리는 일이 숙제처럼 되어버리고 미루곤 합니다.

몇달 전 우리 네 딸은 이사며 손자 입원같은 집안 사정으로 꽤 오래 아무도 전화드리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엄마께서 전화를 해서 "그저께 밤에 화장실 다녀오다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다. 뉴스에 나오는 열흘 지나 발견되는 독거노인 고독사가 남 얘기가 아니겠구나."라며 담담하게 하시는 말씀에 죄송하며 눈물이 왈칵 나려했습니다.

그후 남편은 휴일마다 전화를 드리는데 신기한 건 옆에서 들어보면 엄마는 남편의 말은 꽤 잘 알아 들으시고 몇번 되묻긴 해도 두사람이 별 어려움없이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엄마의 밝은 웃음섞인 말소리에 제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통화를 끝낸 남편에게 "당신 수고했어요." 했더니 정색을 합니다.
"이 사람이, 부모님께 전화드리는 걸 "수고"라고 하다니, 당신, 딸 맞아?"
"엄마가 자꾸 되묻고 딴 대답하니 큰 소리로 반복해서 말하고 나면 난,기운이 다 빠져버려."

"노인성 난청에 대한 신문 기사나 인터넷 검색 기사를 유심히 보고 참고했더니 장모님 잘 알아 들으시네. 당신도 소리만 지르지 말고 또박또박 천천히 끊어서 말하고 ㅅ,ㅊ,ㅌ같은 고음 소리를 최대한 정확하게 낮은 음으로 말해 봐. "
남편의 그 말에 무척 고마웠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어이구, 잘 났어."라고 웃으며 빈정대듯 말했습니다.

난청이 심한 엄마에게 살갑고 유쾌한 분위기로 대화하는 것이 원래 좀 무뚝뚝한 남편에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 저는 남편의 진심과 노력에 마음 가득 한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당신은 엄마와 대화거리도 없을텐데 삼십분 넘게 무슨 얘기를 해?" 제 물음에 남편은 "왜 할 말이 없어? 당신 흉만 봐도 시간이 모자라. 나한테 큰 소리치고 막 대들고 잔소리하는 거 장모님한테 다 일러준다" 하며 의기양양해 합니다.

며칠전, 남편이 진지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노인성 난청, 방치하면 더 심해진다는데... 이번주말에 내려가서 보청기 새로 해 드리자. 전문 병원가서 검사 꼼꼼히 제대로 받아서..."
저는 그말을 듣고 진심으로 남편이 고마워서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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