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조석으론 제법 쌀쌀하다. 그래서 두툼한 이부자리에 더하여 침대 바닥엔 따끈한 전기장판을 가동해야 한다. 지독하게 더웠던 지난여름이었기에 다시 맞는 가을이 반가운 건 인지상정이다. 이 즈음엔 또한 먹을거리까지 많아져서 흐뭇하다.
평소 생선을 좋아한다. 9월부터 12월까지 ‘제철 생선’으로 쳐주는 것은 굴과 꽃게, 전복과 대하 등이다. 며칠 전 바다의 영양덩어리인 새우를 먹으러 갔다. 1킬로그램을 주문했지만 반도 못 먹고 남았다.
남은 새우는 라면을 끓일 때 넣어서 명실상부의 ‘해물라면’을 만들어 먹을 요량으로 싸달라고 했다. 셈을 치르려던 중 아내에게 괜스레 언죽번죽 농담을 던졌다. “오늘 먹은 건 당신이 계산하지 그래?”
지난 추석 집에 왔다 간 아들과 딸이 주고 간 용돈을 의식한 계획적 꼼수(?)였다. 그러자 아내는 단박 표정부터 바뀌었다. “몇 푼이나 받았다고 날더러 내라는 겨? 더욱이 아들은 고작 껌 값밖에 안 주고 갔거늘...”
아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추석이나 설날에 집에 오면 아내에게 두둑한 용돈을 주곤 했다. 하지만 지난 추석엔 ‘올해도 그리 주겠지...!’라 믿었던 아내를 과감히 ‘배신했다’. 예년보다 반 이상이나 감소한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아들과 딸이 떠나고 난 뒤 아내는 뺑덕어멈이 되어 구시렁거렸다. “00(아들 이름)가 결혼하곤 사람이 확 바뀌었어! 어쩜 용돈을 그리도 조금 주고 간 건지 암만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가만 두었다간 더 큰 불만의 격랑으로 이어질 듯 싶어 아내의 말을 막았다.
“그거야 당연하지. 이제 아들도 결혼했으니 예전과는 달라져야 되는 게 정상이잖아. 처갓집에도 가야 되고, 거기서 또 용돈도 드려야 할 텐데 어찌 그전처럼 당신한테만 용돈을 두둑하게 줄 수 있겠어? 그러니 이제 그 얘긴 그만 해!”
내가 박봉으로 허덕이는 까닭에 아내 역시 항상 쪼들린 아낙으로 살고 있다. 따라서 평소에도 아내는 현금 대신 내가 맡긴 신용카드로 살림을 꾸려가는 터다. 이런 형편인지라 명절 때 아이들이 주는 용돈은 내 몫까지 아내의 독점이 된 지 오래다.
‘용돈’은 개인이 자질구레하게 쓰는 돈이지만 누군가에게서 받았다는 어떤 구속력을 갖는다. 반면 ‘공돈’은 노력의 대가로 생긴 것이 아닌, 거저 얻거나 생긴 돈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주는 돈과 내가 주는 돈은 ‘용돈’과 ‘공돈’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을 이루는 셈이다.
“딸의 밥은 서서 먹고, 아들 밥은 앉아 먹고, 남편 밥은 누워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공돈이라서 아무런 부담조차 없는, 마치 누워서 먹는 밥처럼 남편이 건네는 돈의 액수를 늘려야겠는데 그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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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용돈
홍경석
2018.09.29
조회 156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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