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은행 일을 보러 시내에 갔습니다.
방학 중이라 보통 때라면 방바닥에 촤~악 하고 달라붙어서 게으름을 피웠을 시간인데 말입니다.
저는 운전면허가 없는 뚜벅이인지라, 조금 서둘러 움직이면 후텁지근한 이 더위를 조금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부지런을 떨었던 것입니다.
은행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과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이었습니다.
아마도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에 모인 듯 했습니다.
저도 서두를 게 없는지라, 원두커피도 한 잔 뽑아서 얼음을 넣고 시원하게 들이켜면서 쉬엄 쉬엄 일을 봤습니다.
은행을 나서다 보니, 출입구 앞 탁자에 커다란 부채도 잔뜩 쌓여있네요.
시원해 보이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기에 하나를 집어 들고 햇볕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리 바쁠 것도 없는데, 워낙 덥다보니 부채로 그늘을 만든 채 앞만 보고 직진.
그런데 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청년 왠지 익숙합니다.
저의 눈빛을 의식했던지 청년도 저를 바라봅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서로 반갑게 달려가 덥썩 손부터 잡았습니다.
그 낯선 듯 익숙한 모습의 청년은, 7년 전에 가르친 제자 태희입니다.
그때는 야리야리 했던 반항기 초절정의 고딩 녀석이 이제는 뼈대도 굵직하니 듬직한 남자가 되었습니다.
반가워하며 전화번호를 묻는 태희의 요청에 번호를 주며, 요즘 뭘 하며 지내냐고 물었습니다.
제대 후에 일을 하다가 다쳐서, 한동안 쉬다가 요즘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는 태희의 말에 그냥 미소만 지어주었습니다.
차마 학교는? 이라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학비도 비싸고, 졸업 이후에 취업도 막막한 현실 앞에서 차마 대학은 빨리 마쳐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스승이라고 아이스커피를 사준다며 제 손을 끌어 잡는 태희에게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말았습니다.
아프기만 한 청춘일텐데, 마음도 몸도 훌쩍 커버린 녀석이 참 대견하기도 했습니다만, 차마 커피를 얻어 마실 수는 없었던 것이 제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나중에 치맥이라도 한 번 하자는 약속을 다짐한 채 서로의 갈 길로 돌아섰습니다.
집에 오다보니, 문득 후회가 듭니다.
그 아이스커피 내가 사줄 걸, 왜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지...
나이가 들어가니 빠릿함도 사라져가는 것 같아 서글픕니다.
청춘도 아프지만, 중년도 서글픕니다.
이것도 인생을 살다보면 다 거쳐가는 과정이겠거니 하고 마음을 다잡는데~
만나서 반갑다는 태희의 메시지가 뜹니다.
조만간 날을 잡아서,
20대 청년의 아픔과 40대 중년의 서글픔을 한데 섞어 날려버릴 올 여름 만큼 화끈한 치맥을,
꼭 먹고야 말 것이라 다짐하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신청곡은 자우림의 하하하송, 일탈, 매직카펫라이드 중에서 한 곡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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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중년이 아픈 청춘을 만났을 때
장연순
2017.08.01
조회 107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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