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윤희씨.
제 일상의 배경에는 늘상 꿈음이 흐르지만
이렇게 사연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네요.
저는 고양이 네마리를 모시고 사는 집사입니다.
꿈음이 방송되는 시간 즈음이면
저녁식사와 청소를 끝내고 책을 읽거나 반쯤 잠이 들어 있거나 합니다.
ㅎ 우리 야옹이들은 따듯한 난로 앞 카페트위에 엉덩이를 모아앉아
나른하게 꿈음을 듣곤하죠.
음,, 오늘은 요 야옹이들과 저의 동거이야기를 좀 해 보려고 해요.
제 삶을
집사 생활 비포 에프터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이들과의 동거 생활로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3년 전 즈음,, 저는 공황장애를 심하게 겪고 있었어요.
정말 힘든 나날이었죠.
남들에게는 제가 좋은 직장, 좋은 부서의 팀장,,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보였겠지만,
저에게는 그런 시선과 기대, 업무 스트레스가 부담이었고
약하고 여린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저 자신을 꽁꽁 숨김기만 했어요.
아마도 그것이 쌓이고 쌓여 병이되었던 것 같아요.
입원과 수술, 공황장애...
그 즈음
우리 첫째 사랑이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 없었기에 오랜 고민 끝에 입양을 결정했습니다.
사랑이는 늘 예민하고 불안해 하는 저의
안정제이자 수면제이자 엄마이고 아기였어요.
잠을 뒤척일 때에는 턱 밑까지 파고들어 잠을 잘 수 있게 감싸 주었고
갑자기 눈물이 흐를 때에는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는 발밑에서 저와 눈을 마주쳐 주었죠.
무심코 고개를 들거나 뒤를 돌아보면
늘 언제나 저를 조용히 바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ㅎㅎ 3마리가 더해져
지금은 4마리의 냥이들과 동거중입니다.
ㅎ 다행히 제 공황장애 증세는 호전되어
이젠 병원도 약도 필요 없게 되었어요.
물론 이들과의 동거로 좋은 일들만 있는 건 아니에요.
가령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라 이리 저리 달려드는 고양이들 때문에
수년간 치던 기타를 고이 모셔두기만 한다든가
높은 곳도 좁은 곳도 아무 문제 없이 점령하는 고양이들 때문에
잡다한 물건들은 모두 내다버렸지요.
감당할 수 없는 털 때문에 검은색 옷은 엄두도 못낸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트북 작업하는 것도
놀아 달라고 노트북 위에 발라당 누워버리는 녀석들을
하나씩 주기적으로 치워내야 하는,,,
참으로 수고스러운 작업이 되어버렸으니
글 하나 쓰는 것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어요.
대신 고양이들의 예민한 시선과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게 되었으니
그런 희생(?)과 포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사는 곳에 6년을 살았지만 이전에는 몰랐어요.
내 조그마한 창으로 하늘과 구름이 얼마나 잘 보이는지
창 밖 나무와 꽃이 얼마나 기민하게 계절에 대처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새가 둥지를 틀고
비는 어떤 소리로 눈은 어떤 무게로 내리는지...
캣타워에 옹기종기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며 모여앉아
인간 집사에게는 늘 똑같을 것만 같은 창밖을
무거운 엉덩이로 응시하는 고양이들에게 괜스레 말을 걸어봅니다.
"우리 아가들 뭘 그렇게 보고 있니"라구요.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을 함께 바라보노라면
마치 고양이가 된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일상의 공간이 특별한 공간이 되고
늘 똑같은 풍경이 생경한 풍경이되고,,
그리고 저는 또
밖과는 다른 속도의 시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느리고 나른하게 포근한,, 꿈음 같은 시간이랄까요.
부산스럽던 냐옹이들이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네요.
저도 이제 그만 자야겠어요.
종종
우리 동거 이야기 들려 드릴게요.
신청곡: 박지윤의 봄눈
p.s: 윤희씨 10년간 꿈음을 지켜주어 고맙습니다. 이제야 감사 인사를 보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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