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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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후회
서효일
2016.07.25
조회 70
아침을 깨우는 휴대폰의 알람이 울릴 때 마다 난 아직도 종종 착각을 하곤 해. ‘왜 당신 전화보다 알람이 먼저 울리지?’ 하고 말야. 그러다 얼른 정신을 차리지. ‘우리 헤어졌지.... 정신 차리고 일어나자.’ 이렇게 하루를 시작 하는 날들이 있곤 해.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내 아침을 깨워주던 당신의 모닝콜은 내 삶의 일부였었어. 습관적으로 당신에게 전화를 걸던 시간들이 되면 반응 없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속으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 나 이제 출근했어, 나 이제 퇴근해. 이렇게 전화를 걸어 말을 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기에 애꿎은 휴대폰만 들었다가 놨다가 하곤 해. 당신은 없고 당신이 내게 남긴 습관만 남아있구나.
오늘은 공항에 손님들 배웅하러 나간 날이라 당신이 사준 빈폴 티를 입었어. 꾸미는데 관심이 없어 대충 아무거나 걸치고 다니던 내게 여름이라 덥다며 입고 다니라고 사준 그 티셔츠 말야. 대구의 여름은 더우니까 마소재로 된 티셔츠로 이쁘게 입고 다니라며 내게 깜짝 선물을 해준 그 날 우리는 헤어졌고 당신이 내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 되어버렸네. 그래서 헤어지러 가던 날도 이 옷을 입었어. 당신이 사준 예쁜 옷을 입고 마지막은 예쁜 모습만 남기고 싶었는데, 당신 기억에 그날의 난 어땠을지 모르겠다.
결혼이라는 큰 관문을 앞에 두고 난 어리고 철없기만 했나봐. 나 스스로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큰소리 쳤었지만 사실은 난 마음의 준비 없이 무작정 일만 저질러 버렸는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지금 결혼하면 후회하지 않을까, 좀 더 내 젊음을 즐겨야 하진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에 빠져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역시 당신 같은 사람은 없고, 나의 부족함을 메워주고 더욱 빛나게 해줄 사람 또한 당신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당신 없는 지금은 그저 공허하고 고독할 뿐이야. 의미 없는 일에 열을 내고 실재 하지 않는 허상에 목표를 두고 좇고 그저 멍하게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 늙어갈 뿐이야. 당신과 헤어지고 나서 내가 큰 소리 치며 자유롭고 멋지게 살 거라고 했는데, 그 말과는 정 반대로 의미 없이 시간만 보내며 송장처럼 지내고 있어. 참으로 바보 같은 내 모습에 내가 봐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원주에 가서 당신과 헤어지고 날 터미널에 남겨두고 떠나가던 당신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만 보았어. 부르지도 잡지도 못한 채, 내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보이지 않고 나서도 그 뒷모습만 쳐다만 보았어.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울기만 하던 당신 얼굴이 눈에 밟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었나봐. 헤어지러 가는 길, 그리고 헤어지고 오는 길. 살면서 그렇게 힘겹고 무거운 발걸음을 더는 하지 않았으면 해. 나도 당신도. 한 번이면 충분해. 말없이 함께 눈물 흘리던 스타벅스에서의 짧은 한 시간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시간이 될 것 같아.
우리는 이미 헤어졌기에 그걸 다시 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당신 같은 사람 또 없다며 스스로 자책하고 후회하는 시간은 더 이상 갖지 않을 거야. 당신 말처럼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서 보다 행복해져야겠지. 당신 또한 그래야만 하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절대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시간들을 통해 앞으로 더 원숙한 사람이 되길 바라야지.
여름에 시작하여 여름에 끝난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았던 우리의 인연이 당신과 나에게 평생 가져갈 소중한 추억과 선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인연은 여기서 끝이 났지만 함께한 시간들은 가슴 속에 남아 앞으로 올 인연들과 시간들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 수 있길 바라.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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