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부터 지었다. 너는 항상 그랬다. 내가 전화를 받기 전부터 전화를 끊고 나서까지 늘 나를 미소 짓게 했다. 특유의 깐족거리는 말투와 토박이 대구 사람인 내게 언제 들어도 낯선 서울말이 나를 더욱 웃게 한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항상 본론부터 말하며 대화를 시작하는 너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화법 까지도 좋았다.
- 형 요즘 힘들다며?
고작 몇 달 차이로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너에게 형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마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져서 대답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항상 안부를 물으며 상대를 챙기는 쪽은 형인 내가 아닌 동생인 너였으니까. 너는 오늘도 정말 예기치 못하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 보니까 형 요즘 힘들어 보이더라. 내가 잘은 모르지만 한 마디만 할게. 괜찮아. 괜찮아 형.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내가 이 말을 듣고 아무 말이 없었던 것은 생각을 한 것도, 그 말을 듣고 너의 말뜻을 헤아리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목이 메었다.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핑 도는 바람에, 목이 메어버리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했었다. 너무나도 듣고 싶던 말이었다. 괜찮다, 다 괜찮다. 이 말이 난 너무도 듣고 싶었었다. 내가 지금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내가 사랑을 놓치고 너무나 괴로운 것이, 꿈을 좇지 못하고 현실에 찌들어 사는 것이 모두 다 괜찮다고 누군가가 말해주길 너무나 원했었다. 이유나 근거가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괜찮다 라고만 말해주었으면 되었다. 그 말을 네가 내게 해주었다.
- 다 괜찮아 형. 살다가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이까지 왔구나 하고 느끼는 날이 올 거야. 걸어온 발자국이 보이지 않아도,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내가 이까지 걸어왔구나 하며 담담하게 생각 하는 날이 있을 거야. 그러니 다 괜찮아.
네 말이 끝나고 나서부터, 난 정말로 괜찮아졌다. 내가 갖고 있던 후회, 불안, 불만 모든 것이 괜찮아 졌다. 사라지진 않았지만 괜찮아 졌다. 네가 군대에서 우리가 함께 하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란 말을 하자, 내 눈앞에는 은하수와 별똥별이, 내 발 밑에는 운해와 섬들이 잊고 지냈던 그 풍경들이 펼쳐졌다. 그 속에 몸을 맡겼다.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 형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참 아름다운 순간들이었어.
정말로 아름다워서 마법 같은 순간들이었다. 나는 마법 같은 순간들 또한 살아왔구나, 이렇게 힘들 때 그 시간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구나, 그리고 그 마법의 시간들을 함께 한 사람이 나를 위로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로 괜찮아졌다. 이 또한 지나가면 아름답게 기억될지도 모를 시간이기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며 스스로 다짐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괜찮다”라는 말과 함께 미소를 남긴 너에게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너와의 전화 통화가 끝나면 내 입가에는 늘 옅은 미소가 퍼지는 걸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나를 찾는 다는 것과 그 누군가에게 위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해준 너에게 나도 한 마디 말이 하고 싶다.
다 괜찮다. 라고
뱅크-후회 신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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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전화벨이 울리며 너의 이름을 확인했을 때
서효일
2016.07.29
조회 96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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