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
어제와는 달리 분홍빛이 살짝 감도는 벚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저는 보고야 말았습니다.
괜시리 들뜨는 마음, 이대로 이 봄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점심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주변에 벚나무가 많아서 정문 밖을 나서기만 해도 봄정서를 만끽할 수 있는 산책이 가능합니다.
시선을 땅에 돌릴 새가 없었습니다.
날은 추워서 냉기서린 공기가 닭살을 돋게 했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순 없는 법...
꽃들은 앞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제 시선은 산책 내내 한 송이 한 송이의 벚꽃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심포니에 꽂혀있었습니다.
같은 수종이지만 어찌 그리 나무 마다 다양한 모습들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한 나무, 두 나무, 세 나무......
지나쳐 갈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 시간 이 장면을 다시 되돌릴 수 없겠지라는 아쉬움에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아름다운 길은 계속 이어졌고, 저의 감성도 더욱 풍성해져만 갔습니다.
그런데 그 화려하고도 장엄한 나무들 사이 사이에 꽃은 없이 멍울만 매달고 있는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늦된 나무인 줄만 알고, 안타까움과 기대를 안고 멍울을 살펴보니 꽃을 머금은 멍울이 아니라 온통 다 잎을 머금고 있는 멍울 뿐입니다.
순간 멍~해졌습니다.벚나무가 잎을 먼저 냈던가~?
제가 이른 봄에 피는 꽃나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잎이 나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는 그 청순함 때문입니다.
어떤 나무보다 먼저 꽃을 피우면서도 초록빛과 섞이지 않고 순전히 꽃만 매달고 있는 그 모습은, 강렬한 색채대비로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은 아니지만 순결함, 순수함, 청초함, 화사함, 연약함과 같은 정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부서지기 쉬운 까닭에 우리 맘을 애틋하게 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런데 지금 이 나무는~?
꽃은 하나도 없고 잎만 달고 있는 나무입니다.
왠지 자연의 법칙을 거스리고 있는 듯한 그 나무가 너무 신기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왜지~? 왜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지난 겨울 이례적인 가뭄이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샀습니다.
그 가뭄 속에서도 나무들은 부지런히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꽃멍울을 만들어가며 화사한 봄을 예비하였습니다.
저도 올 이월 찬 바람부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벚나무들이 조그만 꽃멍울을 머금고 있는 것을 보고 올 봄은 벚꽃이 빨리 피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게으른 나무였을까요~? 아님 뿌리가 약한 가엾은 나무였을까요~?
그 겨울에 미처 봄에 피울 꽃멍울을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4월의 도래와 함께 다들 화사한 꽃잎을 피워 올리는데, 이 나무는 혼자만 초록빛 잎을 피워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무를 바라보는 내내 저는 안타까운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올 봄 벚꽃이 지고 나면, 다른 나무들은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달고서는 빨갛게 익어갈 때까지 또 시간을 준비해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도 없게 되었네요.
그 모습이 왜 그리도 짠~한지......
나무를 보는 내내, 제 생각 속엔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이 겹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고3 수험생만 지도하다가 새출발을 준비하는 파릇파릇한 아이들을 만나게 되니 기분이 절로 상큼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파릇한 요 녀석들 중에도, 인생의 결론을 미리 예단하고 미래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다가올 봄을 예비하는 꽃멍울을 준비하지 못하는 아이들......
꽃멍울이 없으면 열매도 없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교사로서 어떻게 지도해가야 할까요~?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저......
화사한 꽃잎을 달고 있는 주변 나무 들을 주~욱 둘러보며 마음을 달래봅니다.
그 나무에게는 내년 봄을 준비할 이번 겨울이 있습니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꽃멍울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견뎌만 낸다면야 다가올 봄에는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겠지요.
저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겁니다.
우리 반 녀석들에게도 꽃멍울을 준비할 겨울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2015. 04. 09
p.s : 오늘 저희 학교에서는 모의고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입학하고 치르게 되는 첫시험인지라, 많이 힘들었을텐데 제 글이 그 아이들의 마음에 조그만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담임선생님인 저 또한 우리 아이들과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신청곡은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또는 ‘그대에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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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단상.
장연순
2015.04.09
조회 49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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