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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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어느 날 밤의 사소한 일상
남궁명화
2013.11.25
조회 57
지난 수요일 밤,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가 교복을 벗고 노트북을 열더니,
"엄마, 노트북이 망가졌나봐요, 부팅이 안되요."
그래서 큰애 책상위 노트북을 보니 뭔가가 잘못됬는지 정말 노트북 화면이 정지상태로 정지해있네요.
"이게 갑자기 왜 이럴까?"
컴퓨터 문외한인 나는 거실에 있는 남편에게,
"이봐요, 노트북 좀 봐줘, 이게 망가졌나봐 화면이 이상해~~!"

남편이 와서 노트북을 보더니 하드가 나간건가? 하면서 이리저리 만져봅니다.
7-8년도 더 된 노트북이니 이젠 어디가 좀 망가질때도 된건가? 남편은 몇분정도 계속 부팅을 시도하고 시디에 무언가를 끼우고 부팅을 하고 그러더니
안되겠다고 이거 완전히 하드가 나가서 이 안에 자료들도 다 복구가 안될거 같다고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언잖아합니다.
그러면서 노트북으로 너희들 게임 좀 그만하라도 애궂은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네요.

항상 남편은 이렇게 화만 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혼내는 말을 자주 하고 가족들에게 무심하고 때론 하루 종일 말도 없이 어색하게 지내는 존재였어요.
그게 전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왜 따뜻한 아빠가 되지 못하는건지, 아들들과 같이 운동도 하고 즐겁게 대화할 수는 없는건지.
집에서 항상 화난듯한 말투와 짜증섞인 말들만 하는건지..
결혼생활내내 가족에게 무심한 듯, 여행을 가도 사진찍는걸 싫어라 하고 경치좋은 곳에 놀러갔을 때,
"우리 가족사진 좀 찍어요, 여기 정말 멋진 곳이네요." 그래도
내가 당신하고 아이들 찍어줄께, 그렇게 자신은 사진 찍는 거 싫다고 하면서 가족사진도 잘 안 찍는 남편이었죠.

그런 남편이 노트북 하드가 망가져서 그 안에 있는 데이터는 없어져도 상관없지만 우리 가족사진들 저장해 놓은 게 다 없어졌다고,
그 날의 기록들이 다 없어졌다고 갑자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습니다.

결혼 17년, 참 무뚝뚝하고 애정표현도 없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그를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그는 한순간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그런 생각이 들던 날들이 있었죠, 참 슬픈 나날을 지나기도 했었고
여전히 어설프고 웃음이 없고 몸이 약해 짜증이 많은 남편을 보면서 나역시 한숨나오는 시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노트북이 망가지면서 그 안에 우리 가족의 사진이 다 없어져서 어떡하냐고
새벽 2시 넘어까지 노트북을 고치겠다고 거실에서 열심히 만지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무심한 그에게도 우리 가족은 소중하게 기억되고 있던거구나.
표현하지 않은 그의 세세한 마음들이 새록새록 전해지는 밤이었어요.
내일 출근해야하는데 새벽 늦게까지 거실에서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는 남편의 구부러진 등이 울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갑자기 그 등을 껴안아주고 싶어졌어요.
남편의 등이 참 따뜻하구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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