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두고 홀로 제주에 와서 낯선 곳을 찾아다닙니다.
마흔다섯이면 이제 삶도 후반전이니
혼자 여행 한번 다녀오라는 아내의 배려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사흘째인 오늘은 군산 오름이란 곳에 올라
한참을 풍경에 넋 놓고 있다 내려왔어요.
20대 때는 배낭 하나 메고 참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걷고 또 걷고.
끊어진 막차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면서.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거야,란 오글거리는 말도 해 가면서.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부터
둘 또는 셋의 여행에 익숙해지다 보니
혼자 하는 여행이 왜 이리 어색하고 쑥스러운지 모르겠네요.
아내는 싼 거 찾아다니며 먹지 말고
좋은 식당도 가고 예쁜 카페도 눈치 보지 말고 다니라고 했는데
오늘도 숙소 인근에서 가벼운 백반을 사 먹고,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 잠시 몸을 쉬입니다.
군산 오름은 차로 꽤 올라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면
걷는 데가 많지는 않은 곳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연세 드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온 분들도 더러 계시더군요.
감귤 모자를 쓰고 오르는 어린이를 보니
지난겨울 똑같은 모자를 쓰고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던 딸아이가 생각나고
허리를 잡고 쉬엄쉬엄 오르는 어르신들을 보니
이제는 요양병원에 계셔 걸으실 수 없는 어머니 생각도 나네요.
혼자라 술을 안 하다 보니 맥주 한 잔이 아쉬운 밤엔
함께였다면 술잔을 나누며 도란거렸을 아내 생각도 간절해요.
여행도 이제 후반전이에요.
내일은 시장에 가서 우도 땅콩도 사고
집이랑 양가 부모님들께 보낼 귤도 사겠지만,
아내 말대로 좋은 식당도 가고 예쁜 카페도 찾아가 볼까 싶어요.
그리고 많이 걸어볼까 합니다.
사려니숲도, 다른 오름들도 더 올라가 보려구요.
정말 나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후반전, 더 열심히 뛰어보기 위해
지칠 때까지 한번 걸어보려고요.
신청곡은, 베란다프로젝트의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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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띄우는 편지
변진한
2022.11.11
조회 289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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