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원으로
43년전 결혼을 하여 속초에 신혼집을 얻어야 했다.
이사를 가기위해 열흘전 부터 강릉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오가며 월세방을
얻으려 했으나 집이 괜찮으면 갖인 돈이 부족하고 갖인 돈에
맞히면 집이 허룸했다. 결혼하여 마련하는 첫 살림집인데 집을 얻다보니
피난길이 없는 현실의 장벽으로 신혼의 신비스런 로망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값싼집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보름만에 작은 부엌이 달린 방하나 월세를
얻어 이사를 했다. 어찌된지 이사를 하고 2일째에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게 아닌가
그 때가 바로 장마철 시작인 7월 8일 이었다.
신혼집기류가 별로 없어 이사짐이 단순 했어도 정리가 다 되지 않아 방안이 어지러웠다.
저녁부터 비가 내려 밤 11시쯤 되자 지붕이 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엌쪽 천정이 새기에 세수대야를 받첬다. 아니 아랫목 위가 새기 시작하더니
이곳 저곳이 샘구멍 처럼 새기 시작했다. 이삿짐을 비가 새지 않는곳을 찾아 정신없이
옮겨 놓았지만, 점점 방안은 물바다가 되어 어디 이불을 옮길곳이 없어 안고 있었다.
물이 많이 새는 순서에 따라 바게스를 받히다가 우산 2개를 바치다가 결국 신혼때
준비한 요강까지 받히게 되었다. 밤은 깊어가고 방안에 물이 범벅이니 어찌할바를 몰라
죄송한 맘도 가리지 않고 염치 없이 깊히 잠에든 집주인한테 비닐이 큰것 있으면
빌려달라고 애원 했다. 주인은 자다가 놀라 어디에 비닐을 쓰려고 그러느냐고 했다.
천정에 빗물이 새어 그런다고 했더니 주인도 우리방에 와 보고 놀라 이웃에 가
천막을 빌려 주었다. 신혼의 첫 살림방이라면, 방이 좀 넓고 집 상태가 좋아야 하는데
밑천에 맞추어 가장 값싼방을 얻다보니 집주인 에게 젖은 가재도구를 보상해 달라고도
못하는 현실이 아닌가 이사를 한 당시는 지금부터 43년전인 1978년도 였다.
월세라도 보증금이 있을 시대였지만, 값이 너무 싼 집을 고르다 보니 보증금 없이
월 5천원을 다달이 선세로 내는 월세방 이었다.
누수로 인하여 꼬박 밤샘을 하며 가재도구를 지키려 했지만, 방은 온통 물바다 였고
이부자리는 젖어있어 짜면 물이 나올 정도 였다.
70년대는 부유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19공탄 연탄불로 난방을 할 시기라
방안에 불을 강하게 피워 젖은 솜이불을 말리느라 3일간 수난을 겪었다.
강산이 네번이나 바뀐 43년이란 기나 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비가 많이 온다는
기상대의 호우주의보 예보만 있으면, 그 당시의 고생스러움의 악몽으로 가슴이
나도 모르게 덜컹 내려 앉아 밤샘을 했던 생각이 어제인듯 또렸이 뇌리를 스친다.
"불행중 다행"이란 속언과 같이 그 당시에 어렵게 어렵게 고난을 견디며 살아가는
절약정신이 습관화 되어 지금은 당당하게 자식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켜 손주까지
보며 반듯한 내집에서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신혼을 신혼답게 꾸며주지 못한
부족한 남편으로서 얼굴에 주름이 곶감 같이 더덕더덕한 아내만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죄스러울뿐이다.
매년 7월 8일은 !
무슨일이 있어도 아내와 외식하며 선물하는 날로 인생의 중죄인으로서 큰빚을 갚는
"고마운아내의날"이다.
신청곡
기억속으로-이은미
이건원. 강원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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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원으로
이건원
2021.07.04
조회 20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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