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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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자동차 옆에 서서
서효일
2019.04.23
조회 126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어느 한적한 국도를 달리며 난 끊임없이 차를 세웠다가 달렸다가를 반복했다. 인근의 주유소를 찾아 돌고 돌아다녔지만 자정이 넘어서 밝게 들어온 주유 등을 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더 이상 나의 노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고서야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불 꺼진 황량한 어느 외딴곳의 주유소에서 밤하늘의 별 이나 바라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출발 전 주유를 하지 않은 나 자신을, 고속도로 휴게소를 습관처럼 지나쳐버린 나 자신을, 보다 빨리 전화를 하지 않은 나 자신을 책망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름의 심각하고 한숨을 자아내던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기름이 오고 그 기름이 내 차에 들어가는 것으로 모든 것에 해결되었다.

지금 나의 인생이 흘러가는 것이 너무나도 이 일과 닮아있다. 나는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이 달려야 할 때라며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해왔다. 물론 나는 내가 완벽히 준비가 된 상태라고 착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면한 채. 잘 닦인 길과 달릴 수 있는 시기가 맞물려 있다고 그저 마음만 급해서 두 다리만 놀려댔다. 그리고 여지없이 넘어졌다.

주변에 참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되던 사람들이 결혼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이제 그럼 해야겠거니 생각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 있어서 체크포인트 일뿐이라지만 나는 얼른 그 지점을 돌파하고 싶었다. 그래서 준비도 마치지 않은 채 고속도로를 달렸고, 주변 사람들의 충고라는 휴게소를 외면하고야 말았다.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정말로 늦어있었다. 준비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미리 마련하여 갖춘다는 것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굳게 먹은 내 마음은 그저 강한 의지이자 준비라는 단어의 범주에 들어가는 한 가지 요소 일뿐이었지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착각이었다. 잘 달릴 의지가 있다고 그저 급하게 달렸기에 붉게 들어온 경고등 앞에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강한 자신감이 나라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휘발유이기에 당황하고 걱정이 되는 상황에서도 내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했다. 현실이라는 것은 인력으로 극복하기 어렵다는 주변의 우려와 걱정을 보란 듯이 극복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자 하면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고, 나는 내가 그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고 오만이었고 자아도취된 어리석은 인간의 객기였다. 결정적으로 결혼이라는 첨예하고 복합적인 문제 앞에서 나 혼자만의 힘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차가 멈추고 나서야, 그제서야 나는 나 자신을 책망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외면한 채 나르시시즘에 빠져 모든 것을 망쳐버린 나 자신을 미워했다. 가장 중요한 것. 그건 바로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은 두 사람 모두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내가 두 명분의 몫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나 혼자만 조급해져선 괜한 객기만 부려버렸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방황하고 헤매고 나서야 후회할 땐, 그땐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항상 스스로를 타일렀던 것이 있었다. 사회적 시계에, 그 시계가 내뿜는 소리에 휘둘리지 말자고. 난 나만의 시간을 살고 나만의 옷을 입고 나만의 방법으로 걸어가자고. 주어진 길을 걷고 주어진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면, 그 방법과 호흡만큼은 나의 방식으로 해나가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난 그 누구보다도 사회적 시계를 민감하게 쳐다봤고, 수업 시간이 마치길 바라는 학생들처럼 그 시계를 시도 때도 없이 쳐다봐왔다. 재깍이는 초침 소리에 조급해 했고 결국 나는 남과 나를 비교해버리고야 말았다.

나 자신을 어떠한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기 위해 의식적으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내 스스로 강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자기 암시를 걸어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기를 노력해왔고 그러한 하루하루들이 모여 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기를 노력해왔다. 헛되이 보내지 않은 내 시간들이 내 자신감의 원천이었고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배움을 얻으려는 자세가 나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나의 실수로 인한 실패를 겪고 보니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었고, 과잉된 자기애는 지독한 방어기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자살을 입에 올리는 나약한 철부지 꼬마였고 자존심과 자신감으로 버무려진 나란 인간의 포장지는 나약한 자존감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나약한 사람이었다. 응원과 칭찬 없이 홀로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 당연했던 나는 항상 목말라 있고 외로웠다. 나약한 나는 무거운 갑옷을 걸치며 항상 누군가의 칭찬과 응원을 갈구해왔다.

멈춰 선 차 옆에서 나 자신을 반성하며 되돌아보니 그때 진짜 나 자신이 보였다. 진짜 나란 인간의 모습을 보니 연민이 느껴졌다. 불쌍하기도 했고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안타깝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자신감은 내가 무언가를 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자존감은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해도 변함없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던데, 자기 연민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까?

차는 그저 지금 멈춰 섰을 뿐이지, 다시 달리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또한 이 문제는 정말 간단하게 해결될 것임을 알고 있다. 기름을 가지고 올 구세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차 안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홀로 노래를 부르며 기다릴 수 있다. 그 시간이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어두운 밤길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다. 입에서는 노랫소리가 나오지도 않고 휴대폰의 검은 화면은 적막함의 깊이를 더해주고만 있다. 나는 그저 밤하늘의 별을 세고만 있다. 슬프고 괴롭고 힘들다. 그리고 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간이 흘러 나 혼자 밤하늘의 별을 세던 지금의 이 시간을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상처 입은 채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시간들을 추억하고, 지금의 나약한 나 자신마저 사랑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실수, 실패, 상처가 또 한 번 나를 보다 나은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 터널의 끝에서 밝게 빛나는 새로운 길이 있음을 믿는다. 왜냐하면 내게 촛불 하나를 불러주는 소중한 사람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는 이가 있고, 자신의 삶에 있어 최고의 친구라고 말해 주는 이가 있고, 나의 지겨운 눈물과 투정을 말없이 들어 주는 이가 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고, 내가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이가 있고 촛불 하나 노래를 불러주는 이가 있다. 이들의 존재야말로 내가 내 삶을 낙관할 수 있는 이유이며 내 자신감의 긍정적인 원천이라 생각한다. 오늘 밤도 나는 별을 헤아리며 깊은 밤을 헤매겠지만,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견뎌본다.


윤종신-오르막길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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