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미디어 오늘] - CBS FM <가요 속으로>의 디스크자키 유영재,
200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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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요즘 노래에는 시간과 세월, 기다림이 없어요.” 이여영의 사람찾기⑮ CBS FM <가요 속으로>의 디스크자키 유영재, 7080가요의 미덕에 빗대 최신 가요의 황량함을 꾸짖다 차 안에서 라디오 음악 방송을 듣다, 문득 새삼스러운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옛 우리 가요에는 놀라운 서정성이 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요즘의 천편일률적인 사랑과 이별 노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비유하자면 이 깨달음은 신세대가 장기하의 음악을 들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하다. 이전 세대에게는 당연한 음악이,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지만 개성 넘치는 곡일 수 있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신세대는 요즘 들어도 멋진 산울림과 송창식을 애써 외면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를 두고 단순히 개인적 복고 취향이라거나, 경기가 어려워질 때마다 대중들에게 나타나는 과거 회귀 성향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우리 가요의 다양성에 실제로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당장 당시 우연히 들었던 가요 전문 프로그램, CBS 음악 FM <유영재의 가요 속으로>(이하 <가요 속으로>)의 선곡을 보자. 하루 종일 봄비가 그치지 않았던 지난 20일. 이 프로그램은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와 김학래·임철우의 ‘내가’로 문을 열었다. 이어진 곡은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산울림)와 ‘창밖의 여자’(조용필). 차창가에서 상념에 잠기게 만들기에 충분한 곡들이었다. 빗줄기가 더욱 굵어진 1부(오후 4∼5시) 마지막은 이은하의 ‘봄비’가 장식했다. 반면 최신 가요 전문 TV 프로그램인 KBS <생방송 뮤직뱅크>의 지난 17일 선곡은 손담비·슈퍼주니어·다비치·케이윌·에이트·지아. 어김없이 10대 아이돌들의 사랑과 이별 노래들이었다. 이쯤 되면, 천편일률적인 지금 노래가 서정적인 옛 노래에서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단순히 개인 취향이나 대중의 변덕만은 아니지 않을까? <가요 속으로>의 진행자 유영재(46)씨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래서였다. 1990년 아나운서로 CBS에 입사, 가요 전문 프로그램을 맡은 지는 13년째다. 70, 80년대 가요를 가장 폭넓게 소화하는 <가요 속으로>를 진행한 지는 9년 됐다. 진행자이자 PD, 심지어 FM 부장이란 1인 3역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접촉 과정에서야 알았다. 당장 제작과 진행을 겸직하는 낯선 방송 시스템에 관심이 갔다. “PD와 진행자가 분리돼 있으면, 방송 자체는 매끄럽겠지만 인간적인 맛이 떨어지죠. PD의 생각과 진행자의 생각에 거리가 있을 때는, 청취자와의 소통도 그만큼 느려지는 법이죠.” 그의 주장이다. 아예 가장 이상적인 음악 프로그램은 제작과 진행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생각도 확고하다. 하긴, 70∼80년대 디스크자키의 역할이 그랬다. DJ라는 말보다 더 정확히 그의 일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도 없을 것이다. 13년 베테랑 DJ가 말하는 요즘 대중가요의 문제는 무엇일까? “음반 기획사들이 한 방 터트리기 식으로 접근하고, 그러다 보니 일회성의 획일적인 노래들만 양산됐죠. 옛 음악에는 시간과 세월, 기다림이 있었어요. 좋아하는 가수의 새로운 곡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또 공간도 필요했어요. 정성을 갖고 기다린 후에 한 가수의 음악을 전부 다, 오랫동안 듣는 거죠. 그러나 지금은 신곡의 수명이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해요. 스테디셀러가 없는 거죠.” 음악 방송의 역할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요즘 가요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면) 그것 역시 음악 방송 편성이 당장의 반짝 인기에 집착하는 데서 비롯된 거겠죠.” 다만 그는 옛 노래와 현재의 가요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도, 그 가운데 어떤 쪽이 더 낫다는 식의 평가도 거부한다. “대중가요는 사람을 표현하는 일차적인 욕구의 분출입니다. 그런 점에서 굳이 가요를 놓고 세대간 편가르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요즘 음악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세상이 바뀐 거라고 봐야겠죠. 예전에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수직적이었지만 지금은 수평적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어른들도 SG워너비와 빅뱅,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거죠.” 이건 최신 가요의 가능성에 대한 찬양이다. 대신 현재 대중가요계가 자부해마지 않는 한류 열풍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다. “1960년대 초 영국의 비틀즈가 미국을 침공할 때도 보면,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흡수력이 전제가 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점에서 여전히 소극적이고 폐쇄적이죠.” 남다른 가요 전문가이자 마니아답게, 단절된 가요의 전통을 이어줄 음악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7080 가요의 매력을 제대로 계승해줄 사람으로, 그는 SG워너비와 럼블피쉬, 그리고 장기하를 꼽는다. 여기에 빅뱅까지 추가한다. “이들 가운데서도 SG워너비나 럼블피쉬, 빅뱅의 노래는 저도 자주 듣죠.” 그의 평소 공언처럼, 그는 지난 20일에도 주옥같은 고전 가요 가운데 최신 가요도 한 곡 잊지 않고 틀었다. SG워너비의 <한 여름날의 꿈>이란 노래였다. ☞[미디어 오늘]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