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토) 4학년 7반의 동창회
비회원
201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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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동창회장이 올해가 졸업한 지 삼십년 되는 해라며
여러 차례 연락을 해왔다. 선생님들도 모신다는 것이었다.
토요일 오후, 인천의 한 관광호텔 지하 뷔페.
십 수년만에 만나는 얼굴에서부터 정말 삼십년 만에
처음 보는 친구와 선생님들도 있었다.
사실 동창회에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서울에서 가까운 시골 중학교 출신들, 개중에는 땅부자가 많았다.
동기들 가운에 나처럼 소 팔고 땅 팔아 대학을 나온 경우는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학을 나온 월급쟁이들이
제일 가난하고 전망이 없는 축에 낀다.
아버지가 물려준 땅 덕분에 '시꺼먼 큰 차'를 모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직장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의 근황도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는 벌써 죽었거나,
또 누구는 명예퇴직을 했거나 부도가 났으리라...
4학년 7반이면 삶이 크게 커브를 틀 때다.
동창회 뒤 끝이 뒤숭숭하다.
교감선생님께서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며 축사를 마쳤을 때,
한 녀석이 농담 비슷하게 털어놓는 말,
"여기 모인 애들 땅값을 합치면 몇 조원은 될겁니다!"
땅이 없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창회에서 나는 많이 참은 것 같다.
나는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힘과 용기의 차이'라는 시가 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져 주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4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용기가 절실해진다.
용기가 있었다면 땅부자 친구들 앞에서 나는 아주 유연했으리라..
- 이문재 시인의 에세이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중에서
힘과 용기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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