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토) "서방없는 년은 어찌 사누?"
비회원
2012.11.21
조회 232

어릴 때 외가댁에서 있었던 일이다.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 방 전구를 갈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집안일에 아주 무심한 분이었기 떄문에,
매우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전구를 다 갈고서 의자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는 혼잣말을 하셨다.
"서방 없는 년은 어찌 사누~?"

그게 다였다.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 하시며,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그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나로서는 할머니 입에서 '년'이라는 욕설이 몹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놀라워,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 그 말의 속뜻을 알 것 같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고맙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차마 손자앞에서 "고마워요"
라고 직접 말은 하지 못하고 '남편이 있으니 참 좋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신지 오래지만, 생각할수록 재밌다.
아무리 옛날 분들이라지만 꼭 그런식으로 말씀하셔야 했을까?
하긴.. 지금 어르신들 이야기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그 피를 이어받아 그런지, 한국 사람이 원래 고맙다는 말에
인색하기 때문인지, 결혼생활을 오래하면 응당 그렇게 되는 것인지..
나도 여간해서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하고,
아내가 내게 고맙다고 말한 것도 참으로 오래전이다...

- 김난도 교수 에세이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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