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봄 이야기
박혜옥
2026.05.05
조회 85
연어도 귀소 본능이 있어서 자기가 태어났던 곳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고 하는데 나역시 내가 태어나 오랫동안 살았던 집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것 같다
내가 태어나 자란 집은 일제 강정기 때에 만들어진 관사로써 공직자셨던 아버지의 직장에서 직원들께 부여된 가옥이였다.그때에는 자기집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였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유난히 화초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에게 좋은 조건의 환경을 만들어 주셨었다. 하나는 꽃과 나무를 많이 심어 주신것과 우리들에게 책을 많이 사다 주신 점이다.박봉 이셨던 아버지는 그때 당시 한끼의 점심값을 아껴서 나무 시장 가서 회초리 만한 꽃나무들을 자주 사오시곤 했었다.우리들은 식목일이 아니여도 수시로 꽃나무를 심는것에 아버지를 돕곤 했었는데 땅이 좋아서 인지는 몰라도 한해 한해 커가는 식물을 보며 놀라곤 했었다.시간이 흐르며 우리집에는 4계절의 구분이 생기길 시작했다.추운 겨울 지나 봄이 올때에는 제일 먼저 진달래가 한송이 한송이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그 진달래로 말한다면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아버지가 강릉에서 근무 하실 때에 부하 직원을 시켜서 트럭에다 옮겨져서 우리집 정원에 심겨진 꽃이다.아버지는 이 꽃에 비료를 주시기 시작했는데 나무 주변을 둥그렇게 판 상태로 그속에다 닭똥이며 인분이며 한약 찌꺼기며 연탄재를 수시로 갖다 부으셨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관상수의 진달래 크기가 아닌 무슨 과수원에나 존재하는 독보적인 진달래 나무가 되어져서 장정 5명이 손에 손을 잡을수 있는 크기로 있다보니 하룻밤 자고 나면 이쪽에서 꽃이 피여 있었고 또 하룻밤 자고 나면 다른쪽에서 뽀로롱~ 하며 몇송이 피여 나곤 했다.그런식으로 여기저기 다 피여나면 그야말로 황홀경에 이르곤 한다.화초들도 자기가 피여나는 시기가 있듯이 우리집의 진달래 나무는 다른 일반적인 진달래 보다 훨씬 일찍 피여 나는 꽃이였다.밖은 황사현상에 냉냉한 추위가 기세를 부려도 아랑곳 없이 당당히 피여나는 모습에서 나는 생명의 강인함을 새삼 느끼곤 했지만 오히려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얘네들은 이렇게 당당하게 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나는 뭔가..."하는 소외 되어지는 생각이 그것이였다.어떨적엔 남향 창문으로 환히 비쳐지는 연분홍빛 진달래꽃의 만개한 모습을 일부러 안보고 지나치곤 할때도 있었다 담장 주변엔 키큰 하얀 목련이 피여나고 앵두꽃이 하얗게 핀다.독실한 불교 신자셨던 아버지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밑에서 도를 닦으셨다고 하는 보리수 나무를 정원 이곳 저곳에 심어 놓으셨었는데 불과 7년 사이에 우리집 정원에 심겨져 있던 일반적인 나무의 생명력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빠르게 잘도 커서 엄청난 크기의 위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허여멀건한 꽃들이 떨어지고 나면 연둣빛의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는데 얼마 안 있어서 조금씩 노란색,주황색으로 변해 가다가 아주 빨간색의 완성품의 열매가 된다.문제는 이 보리수 나무의 열매가 익게 되면서 부터다.1.5/2.0의 좋은 시력을 가진 나 보다 더 좋은 시력을 가진 동네 남자 아이들의 서릿감으로 이 열매가 없어질 때까지 우리집은 그야말로 생난리가 나곤 했다.어디서 다들 몰려 왔는지 외출하고 들어올 즈음 되면 몰래 몰래 숨어서 서리하고 있던 아이들이 도망 가기 정신 없었고 어떤 애들은 아예 울타리에 걸터 앉아 서리를 하곤 했다.어머니는 울타리 무너진다고 소리소리 지르시고 얘들은 서리 하느라 난리를 치고...
더 놀라운 사실은 새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먹곤 했다.그럴때는 조약돌로 던져서 새를 쫓곤 했다.참새는 아니였고 알고보니 "직박구리"라는 새 종류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재미있는 사실은 유학가서 살았던 집 정원에 커다란 버찌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도 직박꾸리 새들이 떼를 지어 와서 먹곤 했었다.그곳에서 버찌가 익어가면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나가서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 오곤 했었는데 어느날 주인 할머니가 초인종을 누른적이 있었다."버찌가 하나도 없다! 어떻게 된거냐?"며 내게 물으셨었다.발코니에 나가 보니 직빡꾸리 새떼들이 다 와서 모조리 다 먹고 한개도 남기지 않고 가 버린 것이였다.한국에도 직빡꾸리가 있지만 외국에도 직빡꾸리가 살고 있다.참새 보다는 조금 큰 크기의 새로써 항상 떼지어 다니며 열매를 먹는 새임을 알게 되었다.아무튼 우리집은 앵두며 보리수 열매며 꽃사과며 감나무며 배나무며 새들의 안식처가 되어 열매뿐 아니라 해충이라 불리우는 애벌레를 먹기도 하는 새들의 아지트가 되는 곳이기도 했다 요즘 같이 아파트 주변에 철쭉이 피고 연녹색의 화초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태어나 살았던 우리집 전원주택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여나곤 한다.그때 당시의 주변 사람들은 '돈 많이 벌어 언젠가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조금은 부르조아적인 티가 났던 선망의 전원주택 이였던 우리집의 봄 이야기는 내 기억속에 아직도 현재 진행중 이다
<신청곡> 조용필씨의 친구를 신청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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