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청년 28번째 결혼기념일 기억법
정일환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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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앞 카페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촘촘한 뽀글이 파마를 어깨선까지 내려뜨리고 블랙 가죽자켓에 블랙 월남 주름치마, 뾰족한 블랙 힐로 강렬하게 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28년의 모태솔로 서울 유학청년은 졸업에 앞서 만난 그녀 덕분에 그녀를 만나기 전과 만나고 나서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직접 처음 듣는 가벼운 부산 톤 사투리의 매력은 만날 때나 혼자있을때나 늘 내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김광석과 이문세의 노래를 유난히 좋아했고 크지 않은 키 덕에 늘 내 곁에서 총총히 따라오는 그녀와 마로니에 공원 반경에 있는 주점과 카페를 섭렵했습니다.
늦게 혜화동에서 그녀가 사는 고모님댁 면목동을 가는 버스 안도 두 지방 커플에게 손잡고 기대기 좋은 데이트 장소였구요, 더 늦게 혼자 돌아오는 버스편은 잠깐 떨어져 있어야 하는 아쉬움과 내일 만날 시간이 가까워 올거라는 즐거움이 교차하는 유일 혼자의 시간이었습니다.

28년전 학교앞 주점에 마주앉아 선반에 있는 투박한 잔이 멋있다며 두개를 가져다 우리만의 소주를 따라 작은 행복에 취하며 한껏 감상에 젖어 광화문 연가를 낮은 목소리를 흥얼거리던 그녀를 기억합니다. 창경궁 돌담을 나란히 걸으며 덕수궁 돌담길 노래를 흥얼거리던 기억의 시간도 생생합니다.
28년간 몇번의 이사 때문에 지금은 작동을 멈추고 다락방에 잘 보관되어 있는 정확히 28년된 그녀의 혼수품 레코드와 최애곡을 포함 여러장의 레코드 판들을 가끔 볼때마다 반드시 수리해서 광화문연가를 꼭 듣겠다고 같이 합을 맞춥니다. 주택의 작은 다락방이 창고가 되어 그곳에 올라갈 일이 있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레코드는 작동을 멈춘지 10년 이상 넘었지만 반드시 수리해서 그녀와의 추억을 소환해 내고 말겠다는 신념을 불태웁니다.

이제 그 순수청년 시대의 젊은이들이 치열하게 살아온 28년의 세월 앞에 26일 목요일 생일을 맞은 큰 아들, 그 이듬해에 태어난 작은 아들과 7년의 텀으로 귀하게 얻은 고명딸이 가운데 새로 소중하게 끼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힘든 기억이 방울방울 세아이들과 함께 떠오르는 멋진 28년을 올해도 기억합니다. 28년전 3월 28일, 또 오늘은 늘 그렇게 반복되면서 나와 그녀와 세 아이들과 끈끈하게 이어져, 떠나가지만 남아있는 서로의 소중함을 추억할겁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하면 할수록 소중한 그녀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옵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마음의 거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애틋한 추억의 거리는 긴 세월의 시간도, 물리적 거리도 절대 떨어트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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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 28년전 청년이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CBS음악 FM을 틀어 놓고 혼자만의 가죽공예 시간에 푹 빠져 있을 겁니다. 그 중에서 박승화의 가요속으로 시간이 가장 센치하게 이곡이 어울릴 거라 생각합니다.
엊그제같은 28년전 오늘 3월 28일을 기억하면서,
지금도 변함없이 잘 어울리는 촘촘한 뽀글이 사자 갈퀴 머리를 한 그녀와 함께 듣고 싶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나야 나!
3월 28일에 이문세님의 광화문 연가 신청합니다.
혹시 이노래가 어려우시다면 박진영의 그녀는 예뻤다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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